시간의재
그래 죽을 수밖에 없는 거다 본문
[그래 죽을 수밖에 없는 거다.] 다른 사람들보다도 먼저 죽을 것은 사실이겠지만, 그러나 인생이 살 만한 가치가 없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결국 서른 살에 죽든지 예순 살에 죽든지, 별로 다름이 없다는 것을, 나도 모르는 바 아니었다. 그 어떤 경우에든지, 그 뒤엔 다른 남자들, 다른 여자들이 살아 갈 것은 마찬가지요, 그리고 여러 천년 동안 그럴 것이다. 요컨대 그것은 지극히 명백한 일이었다. 지금이건 이십년 후이건 나는 죽을 것임엔 다름이 없었다. 그 때 그러한 나의 이론에 있어서 좀 거북스러운 것은, 앞으로 올 이십년의 생활을 생각할때, 나의 마음속에 느껴지는 무서운 용솟음이었다. 그러나 이십년 후에 어차피 그러한 지경에 이르렀을 적에, 내가 가지게 될 생각을 상상함으로써 그것도 눌러버리면 그만이었다. 죽는바에야 어떻게 죽든, 언제 죽든, 그런 건 문제 아니다. 그것은 명백한 일이었다. 그러므로(그리고 어려운 일은 이<그러므로>라는 말이 표시하는 모든 추론을 시야로부터 잃어버리지 않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나는 나의 상고의 각하를 승인할 수 밖에 없었다.
나에게는 확신이 있어. 나 자신에 대한, 모든 것에 대한 확신, 그것은 너보다 더 강하다. 나의 인생과 닥쳐올 이 죽음에 대한 명확한 의식이 나에게는 있어. 그렇다, 나에게는 이것밖에 없다. 그러나 적어도 나는 이 진리를, 그것이 나를 붙들고 놓치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굳게 붙들고 있다. 내 생각은 옳았고, 지금도 옳고, 언제나 또 옳으리라. 나는 이처럼 살았으나, 또 다르게 살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나는 이런 것을 하고 저런 것을 하지 않았다. 어떤 일은 하지 않았지만, 이런 다른 일을 하였다. 그러니 어떻단 말인가? 나는 마치 저 순간, 나의 정당함이 인정될 저 새벽을 여태껏 기다리며 살아 온 셈이다. 아무것도 중요한 것은 없다. 나는 그 까닭을 알고 있다. 너도 그 까닭을 알고 있는 것이다. 내가 살아온 이 허망한 생애에선, 미래의 구렁 속으로 부터 항시 한줄기 어두운 바람이, 아직도 오지 않은 해들을 거쳐서 거슬러 올라와, 그 바람이 도중에, 내가 살고 있던 때, 미래나 다름없이 현실적이라 할 수 없는 그 때에 나로서 할 수 있는 일들을 모두 아무 차이도 없는 것으로 만들어버렸던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죽음, 어머니의 사랑, 그런 것이 무슨 중요성이 있는가? 너의 그 하느님, 사람들이 선택하는 생활, 사람들이 선택하는 숙명, 그런 것이 무슨 중요성이 있다는 말인가? 단지 하나의 숙명이 나 자신을 사로잡고, 나와 더불어 너처럼 나의 형제라고 하는 수 많은 특권을 가진 사람들을 사로잡는 것이 아니냐? 누구나 다 특권을 가지고 있다. 특권을 가진 사람들 밖에는 없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도 또한 장차 사형을 받을 것이다.살인범으로 고발되어, 네가 어머니의 장례식 때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고 해서 사형을 받는단들, 그것이 무슨 중요성이 있다는 말인가? 쌀라미노의 개나, 그의 마누라나 그 가치를 따지면 매한가지다. 꼭둑각시 같은 그 자그마한 여자도, 마쏭과 결혼한 그 빠리 여자나 마찬가지로, 또 나와 결혼을 하고 싶어하던 마리나 마찬가지로 죄인인 것이다. 쎌레스트는 그 성품이 레이몽보다 낫지만, 쎌레스트나 마찬가지로 레이몽도 나의 친구라고 해서 그것이 무슨 중요성이 있으랴? 마리가 오늘 또 다른 한 사람의 뫼르쏘에게 입술을 내바치고 있단들 그것이 어떻다는 말인가? 사형을 받은 녀석, 이놈아! 너는 도대체 아는냐? 미래의 구렁속으로부터.......그 모든것을 외치며, 나는 숨이 막혔었다.
- 알베르 카뮈 "이방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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