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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라는 건 우스운 것

물고기군 2001. 12. 20. 19:21

인생이라는 건 우스운 것, 어떤 부질없는 목적을 위해 무자비한 논리를 불가사의하게 배열해 놓은 게 인생이라구. 우리가 인생에서 희망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은 우리 자아에 대한 약간의 앎이지. 그런데 그 앎은 너무 늦게 찾아와서 결국은 지울 수 없는 회한이나 거두어들이게 되는 거야. 나는 죽음을 상대로 싸움을 해왔어. 그건 우리가 생각할 수 잇는 다툼 중에서도 가장 맥빠진 다툼이지. 그 다툼은 어떤 막연한 회색 공간에서 일어나는데, 발 밑에 딛고 설 땅이 없고, 주변에 아무것도 없으며, 구경꾼도 없고, 소란도 없고, 영광도 없고, 승리를 향한 커다란 욕구도 없고, 패배에 대한 커다란 두려움도 없고, 미지근한 회의로 가득한 그 진저리나는 분위기 속에서, 우리 자신의 정당함에 대한 많은 믿음도 없이, 또 우리 적수인 죽음에 대한 믿음은 더더구나 없이 다투기만 하는 거야. 만약 이런 것이 궁극적 지혜의 형식이라면 인생은 우리 몇몇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풀기 어려운 수수께끼일 수밖에 없어. 나는 내 삶에 대한 최종 판단을 내릴 마지막 기회를 간발의 차이로 놓쳤지만, 어차피 내게는 아무런 할말도 없었을 것임을 알고 굴욕감을 느꼈을 뿐이야. 내가 커츠를 주목할 만한 사람이라고 주장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어. 내 스스로 죽음의 문턱 너머를 바라본 적이 있기 때문에, 나는 커츠의 눈초리가 지닌 의미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었어. 그 눈은 촛불을 보지 못하고 있었지만, 온 우주를 감싸안을 듯이 활짝 뜨고 있었고 암흑 속에서 고동치고 있는 모든 심장들을 침투할 수 있을 만큼 꿰뚫고 있었어. 그는 자기 삶을 요약한 후 <무서워라!>라는 말로 판정을 내렸던 것일세. 그는 주목할 만한 사람이었어. 어쨌든 그 말은 모종의 믿음을 표현하고 있었어. 그 말은 솔직했고, 신념을 지니고 있었으며, 그 속삭임 속에서는 항거의 어조가 떨리고 있었고, 흘끗 엿보인 진실의 그 끔찍한 표정을 지니고 있었으며, 그래서 열망과 증오가 기이하게 뒤섞여 있었다고도 할 수 있지. 그런데 내가 가장 잘 기억하고 있는 것은 내 자신이 처했던 극한 상황이 아니야. 그건 육신의 고통으로 가득하고 만물의 덧없음이나 심지어는 고통 자체의 덧없음에 대한 무관심한 경멸로 가득한 형상 없는 회색 비전이었어. 내가 잘 기억하고 있는 것은 그게 아니었어. 내가 보기에 그간 내가 체험해 온 것은 바로 커츠의 극한 상황이었어. 사실, 그는 마지막 한 걸음을 성큼 내딛으며 죽음의 문턱을 넘어갔던 거야. 그러나 나는 그 문턱에서 머뭇거리다 물러서도록 허용되었지. 아마도 그와 나 사이의 차이는 바로 거기에 있을 거야. 아마도 모든 지혜, 모든 진실 그리고 모든 성실성도 우리가 그 보이지 않는 세계의 문턱을 넘어가는 바로 그 알 수 없는 순간 속에 압축되어 있을 것이네. 아마도 그럴 거야! 내가 나의 삶을 요약하며 판정을 내렸다면 그것이 무관심한 경멸을 나타내는 말은 되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하고 싶네. 하지만 그의 외침이 더 훌륭했을 거야. 훨씬 더 훌륭했을 거야. 그 외침은 하나의 긍정이요 하나의 도덕적 승리이며, 그 대가로 그는 무수한 패배, 끔찍한 공포 및 끔찍한 욕구 충족을 겪어야 했어. 그러나 그건 하나의 승리였어!

- 조셉 콘래드 "암흑의 핵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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