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재
폐하, 삶이란 현재이니까요. 본문
왕 : 나의 성안에서 나, 선량한 왕은 웃을 수 없는 왕녀의 소문을 들었다. 나 역시 진지한 남자로서 웃음을 경멸하노라. 그래서 나는 그 왕녀를 나의 아내로 삼고자 하노라. 내가 모르는 것은 그 왕녀가 사는 곳. 내게 그것을 말해주면, 큰 상금을 받으리라!
뜨내기 : 저는 왕녀께 폐하의 성을 일러 드릴 수 있습니다. 마침 왕녀를 찾아가는 길이니까요. 그렇지만 진심으로 미리 말씀 올리오니, 희망을 갖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제가 가면 왕녀께서 웃으실 테니까요!
왕 : 그대는 헛걸음을 하는 걸세. 들어 보라, 방랑자여. 웃지 않는 것은 왕녀의 뜻이라네! 그것도 마땅한 이유를 갖고. 모든 것이 한번은 죽는 존재라는 것을 생각하는 자는 결국은 쓰디쓴 결론에 이르기 마련일세. 세상은 둥근 것, 반짝거리는 하되 비누거품처럼 언젠가는 꺼지는 것이라는. 그럼 인간은 생각에 잠겨, 웃음 대신에 심각하고 엄숙해지지 않겠는가?
뜨내기 : 보아하니, 폐하께선 현명하신 분인 것 같군요. 그렇지만 틀린 면을 한 번 보시겠습니까. 죽음을 향해 사는 사람은, 폐하, 바보인 겁니다. 왜냐하면, 폐하, 삶이란 현재이니까요.
유리컵이란 깨어지기 위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포도주에 비춰 번쩍거리기 위해 만들어진 것입니다. 설혹 언젠가는 깨어질 것을 알고 있을망정. 하지만 그것이 유리잔으로 있는 한은, 그런 잔은 가득 채워져야 하는 법이지요!
왕 : 언젠가는 깨어질 것을 알면서도 어찌 유리잔이 그 번쩍거림을 기뻐하겠는가?
뜨내기 : 유리잔은 그것이 영원히 번쩍일 수 없음을 아는 까닭에, 바로 그렇기 때문에 기뻐하는 것입니다!
왕 : 방랑자여, 그대는 내 말을 이해하고자 하지 않는구나. 우리 같이 왕녀에게로 가보세. 가서 웃어 보게. 그래서 왕녀도 어울려 웃는다면, 그대에게 내 대신 왕의 자리를 갖게 하리라!
뜨내기: 내기는 성립된 것입니다, 폐하! 하지만 제 말을 들어 보십시오. 웃음은 인간과 짐승을 구별하는 것. 그리고 인간은 언제든지 인간을 알아보는 대목은 인간은 적당한 시간에 웃을 줄 안다는 점입니다.
- 연극 "백조에 달라붙기"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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