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재
가끔 그러는 것처럼, 이전 게시판에 들어가 닥치는 대로 글들을 몇 개 읽었다. 바로 이전 게시판의 첫글은 1999년 12월 12일날 내가 올린 글이다. 거기에는 졸업논문이 쓰기 싫다고 적혀 있다. 그렇지. 그 때 나는 대학 4학년, 졸업을 앞두고 있었지. 총 2205개의 글들이 있는데, 그게 1999년 12월 12일 부터 시작해서, 다음 다음해, 그러니까 2001년 5월 14일까지 올라온 것이다. 거진 1년 반 동안이다. 초기의 글들을 살펴보면, 지금은 군대에 가 있는 99학번 백동현의 글이 반갑다. 99학번, 내가 들녘에 다시 들어간 게 99년도였다. 어떻게 보면, 그 해 들녘에 들어왔다는 점에서는 나와 같다. 보미와 동기라는 것도 신기하다. 그리고 곧 이어, 2000년 봄에는, 00학번들의 이름이 등..
아침 8시에 카페의 문을 열어주기 위해 잠에서 깼다. 다시 잠들지 않기 위해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약 2시간을 더 잤다. 이상한 일이다. 이럴거면 차라리 침대에 누워서 잘 걸 후회하면서, 욕을 하면서 침대에 몸을 던졌다. 그리고 침대에서 약 3시간을 더 잤다. 일어나보니 1시다. 몸이 약해진 건지, 마음이 약해진 건지 알 수가 없다. 내가 자대에 배치를 받은 것이 6월 쯤 되었으니까, 아마 첫 면회는 6월 말이나, 7월 쯤이었을 거다. 어머니는 아주 차갑게 식힌 비락 '식혜'캔을 내게 건네주었고, 나는 이제 식혜도 캔 음료로 나오네 라고 새삼스러워했다. 고작 두 달 정도 지났을 뿐인데, 그깟 캔 식혜에 내가 세상과 아주 오래, 멀리 떨어져 있었던 것처럼 느꼈다. 그 날 밤 내내, 나는 빗소..
이 홈페이지의 디자인은 사실 다른 사람의 것을 흉내낸 것에 불과합니다. 항상 그렇듯이 말이죠. 이렇게 자꾸 흉내내다 보면 언젠가는 스스로도 뭔가 그럴듯한 것을 만들 수 있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넌 대단한 걸 잃어버린 양 호들갑을 떨지만, 마치 세상 전부를 잃은 것처럼 말이야. 허나 네가 잃은 건 그녀가 네게 주었던 '다정함'일 뿐이야. 하나의 사랑도, 4월의 100퍼센트의 소녀도, fresh한 겐조 향수내음도, 자주 쓰다듬던 머리칼도, 매끄러운 피부의 감촉도 아닌 여자의 친절한 배려, 다정함, 그리고 너도 알다시피 그건 이미 사라졌어. 오래된 책에서 10년전의 나뭇잎 책갈피를 찾아내듯 찾을 수 있는 게 아니야. 하지만 괜찮아. 누구나 알겠지만 '다정함'에는 개성이 없지. 더 예쁜 다정함이 없듯이, 더 못난 다정함도 없고, 호감이 가는 다정함, 혹은 사람을 불쾌하게 하는 다정함도 없어. 다정함은 다정함일 뿐이라고. 물론 꼭 같진 않겠지만 그녀가 줬던 그만큼의 다정함은 언제든 구할 수 있을거야. ..
오랜만의 비다. 창문 바깥으로 얼굴을 내밀고 물웅덩이에 떨어지는 빗방울과 얼굴을 가린 우산의 행렬을 바라본다. 바람 한 점 없는데, 작은 잎사귀들이 흔들린다. 가만히 바라보니, 빗방울 때문이다. 새로 산 테이프의 비닐껍질을 벗겨 카세트 데크에 꽂아 넣는다. 볼륨을 조절한다.
오랜만의 비다. 창문 바깥으로 얼굴을 내밀고 물웅덩이에 떨어지는 빗방울과 얼굴을 가린 우산의 행렬을 바라본다. 바람 한 점 없는데, 작은 잎사귀들이 흔들린다. 가만히 바라보니, 빗방울 때문이다. 새로 산 테이프의 비닐껍질을 벗겨 카세트 데크에 꽂아 넣는다. 볼륨을 조절한다. 오후.
세상에서 가장 안타까운 순간은, 이미 어떤 하나의 일이 끝난 뒤에, 아니 바로 그것이 끝나자마자, 어쩌면 바로 끝났기 때문에, 내가 그렇게 하지 말았어야 한다는 점을 깨달을 때다. 가령 전화를 끊자마자 내가 상대방에게 그런 식이 아니라, 이런 식으로 얘기했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는 경우다. 그렇다고 도대체 다시 전화를 걸어 그게 아니라 이거라고 말할 수도 없다. 이미 그 일은 끝난 일이다. 그것은 봉합되었고, 굳어졌다. 나는 안절부절한다. 몹시 불쾌하고, 안타깝다. 그러나 그러한 일은 끊임없이 반복된다. 그리고 누구나 알다시피, '이런 식' 아니라 이미 행한 '그런 식'이 오히려 내 자신에 가까운 것이 아닐까? 그것이 되돌아 생각해서, 참 어리석고 부끄러운 행동이라 해도, 그것이 본래의 나다. 단순하게 ..
'나는 이 말을 아주 슬픈 마음으로 쓰고 있다.' 라는 문장이 있다. 이건 오늘 내가 누군가의 홈페이지에서 읽은 문장이다. 그 사람은, 그 글을 '나누고 싶은 글'이란 곳에 올렸고, 그렇게 해서 나는 나눔을 받은 셈이다. 위의 문장의 주인공을 나는 이미 몇번이나 말했듯이 고등학교 2학년 때 만났다. 그 때의 나는 어떤 아이였을까?이상한 일이지만, 그 때의 나를 떠올리면 육교가 생각난다. 학교는 육교 너머에 있었다. 나는 아침마다 육교를 건너 학교를 갔고, 저녁이면 육교를 건너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그 육교는 아직도 있다. 같은 방향의 친구가 있어서 저녁에는 함께 육교를 건넜는데, 나는 그 친구에게 반복해서 '절에 들어갈 거야'라고 말해주었다. 그 생각을 하면 웃음이 난다. 분명 절에 들어간다는 것에 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