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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재
이 시간에 글을 쓴 적은 거의 없다. 소설이든, 뭐든. 아주 예전에, 내가 군에 들어가기전, 그러니까 그건 1995년 1월 경이었다, 낮에 소설을 썼던 적이 있다. 무슨 이유인지, 형이 방이 비었고, 나는 마루에 있던 컴퓨터를 형의 방으로 옮겼다. 왜 형방이 비었을까? 1995년에 우리 가족들은, 뭘 하고 있었을까? 한심하게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형방에는 한강을 향한 커다란 창이 있었다. 바로 강에 면해 있었기 때문에, 탁 트인 강변을 볼 수 있다는 점이 좋았지만, 더 좋았던 건 강변도로의 자동차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건 소음일 뿐으로, 나중에는 방음벽이 설치될 정도였지만, 밤에 방의 불을 끄고 천장을 가로지르는 자동차 불빛도 좋았고, 그 소리도 좋았다. 생각해보면 외롭기 때문이 ..
그 뿐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잠이 오지 않아서, 그래서, 새단장을 했다. 그 뿐이다. 앞으로 계속 이곳을 돌보게 될지, 어떨지 나도 잘 모르겠다. 또, 문득, 다른 색깔이 보고 싶으면, 어쩌면. [단상들]에는, 이전의 내 '짧은 글'들을 모두 옮겨올 생각이다. 그리고, 꾸준히 '단상들'을 일기처럼 적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건지. 누구에게 말하고 있는 건지.
어떻게 살아야 하나, 나는 아직 모르는데 남들에게 아는 척 한다.
문학을 얘기하는 모든 술자리가 즐겁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때로 들녘의 뒷풀이 자리에서 어김없이, 개인적인 의견으로 어떤 부당한 필연으로 문학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이제는 좀 지겹다는 생각을 했더랬다. 하지만 만일 모든 가치가, 차이에 의해서 규정된다면 들녘 뒷풀이의 문학 얘기는 좋다. 문학에 대해, 큰 목소리로 때로 어떤 치열함으로 떠드는 것에 대해 점점 거부반응이 일고 있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그건 또 내 자신의 모습이었는데, 자꾸만 허위 같다. 이를테면, 그건 '담론의 효과'가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요즘의 나는, 정말 활동적이다. 월요일 들녘 세미나, 수요일 석사 1기 세미나, 금요일 희곡팀 세미나. 이럴 수가. 그 탓인지 모른다. 사람들에 둘러 싸여 있는 자리가 버겁다. 사람들과 대화를 ..
새벽까지 이어지는 술자리에서 나는 가끔 어느 한 순간, 내가 왜 이곳에 있는지 아직까지 이곳에 왜 남아 있는지 궁금해한다. 분명 그 전에, 어떤 순간, 즉 막차가 끊기기 십 분 전쯤 나는 습관처럼 망설이고 습관처럼 선택을 한다. 선택이란, 우리가 미래를 예측하는 것으로 근거를 삼는다. 자, 생각해봐. 너는 이것을 선택할 수 있고, 또 저것을 선택할 수 있다. 어느 편이든, 두 가지 선택은 두 가지 다른 미래를 너에게 선사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나는 밤을 새우고, 아주 짧은 순간이지만, 내가 선택하지 않은 선택, 내가 배제하고 버린 미래를, 애도한다.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 아직 스물 살도 되지 않은 후배가 나를 두고 말했다. 선배는 '완벽한 사랑'만 했을 것 같아요. 분명 후배가 말한 '완벽한'이란..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집은 아니지만, 예전에 살던 집은 워낙 낡은 탓인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바퀴벌레들이 살았다. 당시의 바퀴벌레란, 여름이면 꼬이는 파리나 모기 같은 것과 같아서, 방 안을 왔다 갔다하다 우지찍 뭔가 밟히면, 에이 또 바퀴벌레를 밟았네 넘어갈 정도 였다. 가장 진풍경은, 새벽에 물이라도 한 잔 마시려고 부엌에 들어가 불을 켜면, 싱크대에 옹기종기 모여있던 수많은 바퀴벌레들이 흠칫 놀라며 잠시간 상황을 잘 파악하지 못하고 그대로 멈춰 있다가 - 아니면, 그대로 멈춰 있으면 자신들을 발견하지 못할 거라는 닭같은 어리석음 때문인지 몰라도 - 내가 몇 발짝 다가서며 사사삭 흩어지던 모습이다. 바퀴벌레의 가족체계에 대해 상세히 아는 바가 없지만, 묘하게도 마치 소풍을 나온 가족들처럼 ..
오늘은, 정말 맥주를 마시고 싶었다. 날이 맑는 날에는 맥주가 마시고 싶은 걸까? 아니, 다른 이유가 있었을지도 모르지. 그래도, 모든 걸 날씨 탓이라고 돌리고 싶다. (이 구절을 어디선가 읽은 기억이 나는데) 또 깜박 언수형에 속아서, 아니 붙잡여서 함께 맥주집을 가게 되었고, 그곳에서 좀 '심각한' 얘기를 들었다. 좀 심각한 얘기여서, 난 좀 심각해여 했지만, 다만 좀 기분이 나빴을 뿐이다. 나는 언수형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건 그들의 문제야.' 그건 그들의 문제다, 라는 건 내 인생의 모토였다. 누군가에게 화를 내고 싶었는데, 생각해보니 내가 화를 낼 만한 누군가가 없었고, 당연한 귀결처럼 나는 외로웠졌다. 나는, 자주 사소한 일에 외로워지고, 사소한 일에 부끄러워진다. 하지만 그만큼, 사소한 일..
'문(門)'의 비밀 모든 문에는 손잡이가 달려있다. 손잡이가 달려있지 않은 건, 문이 아니다. 우린 그것을 벽이라 부른다. 손잡이는 문을 벽이면서 동시에 통로이게 만든다. 문의 역설, 열림과 닫힘의 테마는 소통과 단절의 테마다. 그러나 축자적으로 벽을 단절로, 통로를 소통으로 여겨선 안 된다. 이를테면, 문이 존재하기 때문에 우린 소통할 수 있고, 단절할 수 있다. 먼저 이것을 이해해야만 한다. 벽은 통로이고, 통로는 벽이며, 그러기에 거기엔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렌즈'는 소통과 단절의 테마를 기본으로 출발하지만, 놀랍게도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간다. 단순화시켜 말한다면, 소통은 단절이며 단절은 소통이라는 역설을 보여준다. 실제로 문의 상징성 자체가 이미 그것을 드러내 보여준다고 할 수 있지만, 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