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2003/01 (7)
시간의재
“때로 나는 진실을 발견했다고 믿었어. 그리고 그건 실제로 진실이었지. 하지만 이제 나는 그것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진실이라는 생각이 들어. 물론 만일 그것이 진실이기만 한다면, 그 가치에는 절대성이 부여되고, 덜 중요하거나 더 중요하다고 이름 붙여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아. 하지만 그건 어리석은 생각이야. 거기에는 엄연한 차이가 있어. 똑같은 진실이고, 똑같이 우리에게 무언가를 가르쳐주지만, 그래서 때로 기쁘고 때로 가슴 아프지만, 어떤 것들은, 그러니까 어떤 진실들은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알게 되고, 바로 그때가 죽을 때지. 그것은 그때가 아니면 알 수 없는 거야. 가장 중요한 진실은, 언제나 가장 늦게 알게 되지만, 결국에는 가장 빠른 셈이지.” - 손톱깎이 중에서 - ..
가아프가 상상을 시작하기만 하면 항상 피투성이 볼보만 눈앞에 어른거렸다. 던컨이 비명을 지르고, 바깥에서 헬렌이 부르는 소리가 들리고, 그리고 또 누가. 그는 운전대에서 몸을 비틀어 운전석 위에 무릎을 꿇고 앉아 두 손으로 던컨의 얼굴을 잡았지만, 피는 멈추지 않았고 가아프는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다 확인하기가 불가능했다.“괜찮아.” 그는 던컨에게 속삭였다. “넌 별일 없을 테니까 조용히 해.” 하지만 혀를 다쳤기 때문에 말은 안 나오고, 부드럽게 피만 뿜어대었다.던컨은 계속해서 비명을 질렀고, 헬렌도 소리를 질렀으며, 또 누군가, 꿈을 꾸는 개가 그러듯, 자꾸 신음을 했다. 하지만 가아프로 하여금 그토록 무서워하게 만든 소리는 무엇이었던가? 또 무슨 소리가?“아무렇지 않으니까 내 말 믿어, 던컨.” 그는..
오랜만에 에 글을 하나 올렸습니다. 트루먼 카포티의 ‘크리스마스의 추억’이라는 단편 중의 한 구절입니다. 사물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 우리가 언제나 눈으로 보고 있는 것. 이 소설은 꽤 오래전에 읽은 것입니다. 그러다 어제 문득 누군가와 채팅을 하다가, 다시금 떠올랐습니다. 좋은 소설입니다. 언제 시간이 나면, 워드로 쳐서 전문을 올려보고 싶습니다. 새 소설을 쓰고 있습니다. 실제로 첫문장을 쓴 건, 작년 6월의 일인데, 그동안 참 게으름을 피웠습니다. 또 그동안 내용도 처음에 생각했던 것과는 많이 달라졌습니다. 이제 예상컨대 3분의 2정도를 쓴 것 같은데, 이번 달 내에는 끝내보려고 합니다. 만일 그렇지 않으면, 영원히 완성시키지 못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완성시키기도 전에 (초고도 내지 못한 채..
“내가 지금까지 어떤 식으로 생각하고 있었는지 알겠니, 버디야?”그녀는 무엇인가를 발견했다는 말투가 되어 내게 말한다. 그녀는 빙그레 웃고 있었지만 그것은 내 얼굴을 보고 미소짓는 것은 아니었다. 내 등의 훨씬 뒤쪽 한 점을 응시하고 있는 것이었다. “난 지금까지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거든. 하느님의 모습을 보기 위해서는 우리가 먼저 앓아 누웠다가 죽어야만 한다고 말이야. 또 하느님을 뵈올 때는 틀림없이 침례교회당의 유리창을 보는 것 같으려니 상상하고 있었거든. 햇빛이 비추어 드는 고운 착색유리처럼 말이야. 아주 밝아서 해가 지기 시작해도 전혀 깨닫지 못하는 거야. 그렇게 생각하면 마음이 놓이는 거였어. 그 빛을 보고 있노라면 무서운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지. 하지만 그것은 진정 잘못이었던 거야...
옛 여자의 소식을 우연히 듣게 되었다. 정확히 말하면, 듣게 된 것이 아니라 보게 된 것이고, 누군가에게서 들은 게 아니라 실제 그녀 자신의 문장을 통해서지만. 그것은 내가 아는 누군가의 홈페이지에 올려져 있었다. 그것은 의례적인 안부 인사 같은 것이었다. 물론 내게 한 것은 아니다. 나는 그 짧은 문장을 통해, 여러 가지 것들을 미루어 짐작해본다. 어머니와 한 집에 살고 있는 것으로 보아, 아직 결혼은 하지 않은 것 같다. 며칠 뒤, 그 홈페이지의 주인, 선생님을 만났다. 농담처럼 그녀의 얘기를 꺼내본다. 그녀는 여전히 말랐다고 한다. 나는 잠시 나와 함께 있던 시절에 그녀의 몸을 떠올려 본다. 인감도장을 팠다. 용도가 용도인 만큼 어머니께서는 좋은 도장을 파라고 했는데, 나로서는 뭐가 좋은지 알 도리..
순전한 나 자신만을 위한 문장이 있을까? 이것은 정말 어려운 질문이다. 범주가 너무 넓다. 원론적인 관점에서 바라보자면, 문장이란 결국 ‘내 밖’에 있는 것이다. 그것은 여기(내 안)가 아니라, 거기에 있다. 문장이란 거기에 있어서, 누군가에게 보여지는 것이고, 또한 보여짐으로써 문장의 존재는 성립된다. 물론 그 ‘누군가’가 ‘나’, 즉 문장을 쓴 한 개인으로 국한되는 경우도 있다. 일기 같은 것이다. 또는 메모다. 하지만 그때도 문장을 쓴 ‘나’와, 문장을 읽는 ‘나’는 다르다. 이 다름은 비유적인 것이나, 철학적인 것이 아니다. 이것은 직관적이다. 이 다름을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알기는 쉽다. 나는 이럴 경우, 나의 의견에 대해 그럴 듯하냐고 물음으로써 상대방을 설득한다. 그럴 듯한가? 그러므로 ‘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