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2002/05 (8)
시간의재
참 오랫동안 문장을, 소설을 쓰지 않았다. 오늘 내가 예전에 쓴 소설 한 편을 읽었다. ‘먼 산에 내리는 눈.’ 역시, 처음 그것을 쓰고 며칠 뒤 느꼈던 것처럼, 부족함을 느낀다. 어떤 부분은 좀 더 밀고 나갔어야 한다고, 그랬어야 한다고 느낀다. 한 때는 소설을 쓴다는 것이 즐거웠고, 한 때는 소설을 쓰는 것이 의미 없는 것처럼 느껴졌고, 한 때는 소설을 쓰는 것이 너무 어렵다고 생각했고, 한 때는 소설을 쓰는 것이 별 것 아니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것은 아주 간단한 일이라고 느꼈다. 산다는 일에 비하면, 정말로 문장을 쓴다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이제는 산다는 것도 소설을 쓴다는 것도, 내가 아직 배워야 할 게 너무나 많다고 느낀다. 내가 어디까지 왔는지, 생각한다. 이만큼인..
나는 집착이 강한 편이다. 남들이 스스로에 대해 하는 말들을 개인적으로 잘 신뢰하지 않는 편이지만, 집착에 관한 한 내 자신 잊지 않기 위해 되새기고 경계하는 실정이라 나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그렇다. 나는 집착이 강하다. 남들이 믿든 안 믿든, 실제로 내 주변의 사람들이 나란 인간을 그렇게 여기든 여기지 않든, 이건 내 문제다. 과거의 경험으로부터 몇 가지의 확실한 사례를 끄집어 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자리에서는 언급하지 않겠다. 그래서 어느 때인가, (그게 몇 살 때였지?) 나는 스스로에게 많은 일들에 대해 무관심해지길 바랐다. 무관심해지기. 이것은 내 삶의 중요한 원칙이 되었다. 그리고 세상의 많은 일들에 대해 무관심해질수록 내 자신이 어른이 되어가는 거라고 느꼈다. 이전에도 한 번 말했..
누구나 힘든 시절이 있다. 나도 그렇다. 그것이 누구도 아닌, 어떤 일도 아닌, 바로 자기 자신 때문이라는 걸 알게 된다. 자기 자신을 상대로 싸우는 것이다. 그런 깨달음은 때로 마음을 편하게도 하지만, 때로 외롭게도 한다. 그리고 항상 희망을 갖게 한다.
하하, 오늘은 충치 때문에 예전에 때운 이의 금박이 떨어졌습니다. 되는 일이 하나도 없군요. 물을 마실 때마다 이가 시려 죽겠습니다. 거울을 통해 살펴보니 떨어져 나간 자리의 이가 조금 시커멓던데 설마 충치는 아니겠지요. 나이 서른에 충치라니. 예전부터 죽 생각해왔는데, 충치야말로 한 인간의 삶의 경향성이 응축된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빨을 열심히 닦읍시다.
오늘은 참 위로받고 싶은 하루입니다. 누군가 있어서, ‘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라고 말해주었으면 합니다. 그렇다 해도, 저는 ‘그건 내 잘못이야.’라고 말해야할 테지만. 직원 두 명이 그만두었고, 18만 원짜리 티 포트와 8만 원짜리 커피 잔이 깨져 있는 걸 발견했습니다. 직원 두 명이 그만 둔 건 함께 일하던 다른 직원과 싸운 게 계기가 되었고, 컵을 깬 건 제가 아닙니다. 그러나 그게 무슨 변명이 될까요? 제가 카페를 맡은(?) 후로, 지금껏 한 명의 직원이 월급 받은 다음다음날 아무 말 없이 나오지 않았고, 한 명의 직원은 제가 해고했고, 그리고 이제 두 명의 직원이 제게 그만두겠다고 말하고 나갔습니다. 이 모든 일이 고작해야 두 달도 못되어서 일어난 일입니다. 이전에도 한 번 말했던 것 같은데,..
그리스 사람들은 부고를 쓰지 않았다고 합니다. 대신 누군가 죽으면 사람들은 이렇게 물었다고 합니다. ‘그는 열정이 있었는가?’ 요즘 카페를 운영(?)하면서 여러 사실들을 새삼, 경험적으로 깨닫게 되는데 오늘 문득 생각하게 된 것은 이 ‘열정’과 ‘수완’의 문제입니다. 만일 사람을 뽑는데, 한 사람에게는 수완이 있고, 다른 사람에게는 열정이 있다면, 과연 누구를 뽑아야 하는가? 물론 가장 좋은 것은 수완과 열정을 다 가지고 있는 사람을 뽑는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경험적으로 그런 경우는 거의 드물고(왜일까요?), 문제를 아주 단순화시켜서 대답하라고 한다면, 저는 열정이 있는 사람을 뽑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열정과 수완, 둘 다 일을 하는데 있어, 또는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 중요한 덕목이지만, 그래도 ..
이야, 안녕하십니까? 오랜만입니다. 잘들 지내고 계시겠죠. 저도 잘 지내고 있습니다. 역시 오랜만에, 정말 근 두어 달 만에 밤을 꼴딱 새고 말았습니다. 어째서일까요? 잘 모르겠군요. 특별한 이유가 생각나지 않습니다. 창 밖으로 벌써 하늘이 희뿌옇게 밝았습니다. 이제 막 방의 전등을 껐습니다. 뭐랄까. 제가 처음으로 밤을 새던 날이 생각나는군요. 저는 그날을 잘 기억하고 있는데요, 그때 제가 밤을 샜던 이유는 단지 밤을 샌다는 게 뭔지 궁금해서였습니다. 밤마다 잠을 자고 아침에 일어나니 날이 밝아 있더라, 그렇다면 제가 잠을 자던 그 시간은 대체 무엇일까, 뭐, 이런 게 궁금했던 것 같습니다. 정말로 졸린 눈을 억지로 부비면서 형과 카드놀이를 하면서 새벽까지 버텼습니다. 근데 형은 왜 그날 밤을 샜을까요..
안녕, 문희야. 참 오랜만에 편지란 걸 써본다. 잘 지내고 있겠지. 나도 잘 지내고 있어. 벌써 서른이 되었다, 나는 말이야. 널 처음 만났을 때 나는 아직 스물일곱 살이었는데. 요컨대 시간이 많이 흘렀다는 얘기야. 오늘 널 닮은 여자를 봤어. 요즘 나는 카페에서 일을 하는데, 처음 그 여자가 카페 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 정말로 너인 줄 알았지 뭐야. 눈이 크고, 눈 사이가 넓은 게 너와 쏙 빼닮은 여자였어. 미인이었지. 물론 너보다는 조금 살이 있었지만 말이야. 시간이 흘렀으니까, 조금은 달라졌을지도 모를 일이잖아. 하지만 너는 아니었어. 주방에서 음료를 만들거나 설거지를 하면서 내내 그 여자를 쳐다봤어. 다행히도 내게 보이는 자리에 그녀가 앉았던 게지. 머리는 어깨까지 내려오는 생머리였고, 가르마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