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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재

물고기통신 47 본문

물고기통신

물고기통신 47

물고기군 2002. 5. 16. 00:54
그리스 사람들은 부고를 쓰지 않았다고 합니다. 대신 누군가 죽으면 사람들은 이렇게 물었다고 합니다. ‘그는 열정이 있었는가?’
요즘 카페를 운영(?)하면서 여러 사실들을 새삼, 경험적으로 깨닫게 되는데 오늘 문득 생각하게 된 것은 이 ‘열정’과 ‘수완’의 문제입니다. 만일 사람을 뽑는데, 한 사람에게는 수완이 있고, 다른 사람에게는 열정이 있다면, 과연 누구를 뽑아야 하는가? 물론 가장 좋은 것은 수완과 열정을 다 가지고 있는 사람을 뽑는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경험적으로 그런 경우는 거의 드물고(왜일까요?), 문제를 아주 단순화시켜서 대답하라고 한다면, 저는 열정이 있는 사람을 뽑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열정과 수완, 둘 다 일을 하는데 있어, 또는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 중요한 덕목이지만, 그래도 열정이 먼저다, 라는 말입니다. 예전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가령, ‘열정이 재능(수완)을 커버한다.’는 말 같은 건, 무능력한 인간들의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술자리 같은 데서 큰 소리로 그렇게 떠들었습니다. 하긴 지금도 여전히 열정이 재능을 온전히 메워줄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열정이 있다면 재능(수완)이 따라올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요컨대 진정한 재능이란 열정의 바탕에서만 성립된다고 말입니다. 이것은 물론 가능성이 있다는 것뿐이지, 언제나 열정만 있다면 재능이 발생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하게 덧붙입니다. 그렇다면 재능은 순수한 열정을 불러올 수 있는가? 제 대답은 노입니다. 열정은 재능과는 전혀 상관없는 곳에서 발생하는 덕목인 것입니다. 재능은 결코 열정을 불러일으킬 수 없습니다. 열정이란 어떤 일을 단순히 더 잘 수행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아닙니다. 열정은 그 일과는 어쩌면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열정이 발생하는 지점은, ‘그 일’을 넘어선 곳에 있습니다. ‘그 일’ 바깥에서 ‘그 일’을 통과해 나가는 것이 열정입니다. 이를테면 열정은 ‘방향’과 ‘힘’을 필요로 합니다. 이 두 가지 요소 중 하나라도 빠진다면 열정은 성립되지 않습니다. 반대로 재능은 ‘그 일’에 묶여 있습니다. 재능에게는 ‘힘’이 있을지 몰라도, 언제나 ‘방향’은 결여되어 있습니다. 재능은 결코 ‘그 일’에서 벗어날 수 없고, 궁극에는 단 한발작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재능만 가지고는 대체 어디로 가야할지도 알 수 없는 것입니다. 어디로 가야할 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움직일 수 있겠습니까? 아주 명백한 결론입니다.
인생이란 사는 게 다가 아닙니다. 뻔한 얘기 같지만, 살아있다면 결국 어떻게든 살아지는 게 인생입니다. 문제는 잘 사는 데 있습니다. 잘 살아야 합니다. 사는 일에 묶일 필요는 없습니다. 잘 산다는 건, 단순히 사는 일을 더 잘 수행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살아가는 데 있어, 우리는 어떤 방향으로 서 있어야 하는가,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가, 하는 문제는 언제나 ‘사는 일’을 넘어선 곳에 있습니다. 그리고 올바른 방향의 열정만이 우리가 우리 자신의 낱낱의 삶을 끌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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