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cent Posts
Recent Comments
«   2025/01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관리 메뉴

시간의재

물고기통신 44 본문

물고기통신

물고기통신 44

물고기군 2002. 3. 31. 23:43
최근에는, 그러니까 ‘톨게이트’ 이후, 제가 쓴 소설을 되풀이해서 읽지 않습니다. 물론 필요에 의해서 몇 번 읽기는 합니다만, 예전처럼 열심히 읽지는 않습니다. 예전에는 왜 그렇게 열심히 읽었던 걸까요? 뭔가 미진한 얘기의 부분을 보충하고, 잘못된 문장, 또는 껄끄러운 문장들을 수정하기 위해서 읽었던 것 같습니다. 심지어 처음부터 끝까지 소리 내어 입으로 발음해 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그 소설이 조금이라도 나아졌는가, 하고 누군가 묻는다면, 제가 할 수 있는 대답은, 그렇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건, 별로 재미는 없었습니다. 그것은 제 자신의 어떤 부분, 분명 엉성하고 못난 부분을 깎아내는 작업이었겠지만, 때로 그렇게 깎아내서 남게 될 어떤 것이, 과연 나인가, 내 소설인가 하는 자괴감이 들기도 했습니다. 마모되는 느낌입니다. 계속 이런 짓을 반복하다가는 아무 것도 남지 않을 것이다, 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마음이 내키는 대로 읽기도 하고, 읽지 않기도 합니다. (앞서 말했듯이 대개 잘 읽지 않습니다.) 그런데 가끔 제 후배들, 또는 저보다 나이 어린 동료들과 소설에 관한 얘기를 하다보면, 그 ‘되풀이해서 읽기’가 ‘어떤 시기’에는 꼭 필요한 것이라는 결론에 이를 때도 있습니다. 마치 사다리처럼, 딛고 올라선 뒤에야, 그것을 치워야 한다고 말입니다. 그 다음에는, 또 다른 사다리가 필요하다. 그런 의견도 일리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그 ‘되풀이 읽기’와 ‘부단한 수정’이라는 사다리를 딛고 어느 지점까지 올라섰다고 말입니다. 제 자신을 고무시키는 의견입니다. 그래, 나는 이제 그런 짓은 안 해도 돼. 그런 건 이제 막 소설을 시작한 친구들에게나 필요한 작업이야. 그런데 과연 실제는 어떨까요?

‘신호대기’를 다시 읽었습니다. 부분적으로 몇 번 반복해서 읽었지만, 통째로 다시 읽기는 쓰고 난 뒤 이번이 처음입니다. 한편으로 그 소설을 쓰면서 제가 의도했던 어떤 것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발견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제 의도와 상관없이 전혀 새로운 어떤 것을 발견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얘기 우습겠지만, 그래도 내가 최대한 정직하고 솔직하게, 또 충분하게 할 얘기를 다 했다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적어도 지금의 내가 쓸 수 있는 어떤 경계까지 밀고 나갔구나, 라고 말입니다. 저한테는 그것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에 완벽한 문장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하루키의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의 첫 문장입니다.) 저는 이 말을 믿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어떤 방향을 향해 있어야 하며, 그 방향에는 아직 가지 않은 길이 있습니다. 결코 끝나서는 안 되는 길이 있습니다.

정확히 3월 9일 날 시작했던 소설을, 일주일 전쯤에 완성시켰는데, 이 소설은 영 망친 것 같습니다. 조금 의기소침해져 있습니다. 이것을 수정해볼까, 아니면 넘어가고 다른 소설을 시작해볼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쪽이든 도저히 시간이 나질 않는군요. 역시 산다는 건 호락호락하지 않은 법입니다.

'물고기통신'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물고기통신 46  (0) 2002.05.15
물고기통신 45 - 진공청소기  (0) 2002.04.02
물고기통신 43  (0) 2002.03.15
물고기통신 42  (0) 2002.03.14
물고기통신 41 <내 작품을 말한다. '서쪽으로 난 길'>  (0) 2002.03.08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