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2000/04 (11)
시간의재
오랫동안, 또 문장을 쓰지 않았다. 4월도 반이 지났다. 살아나간다는 건, 내가 결정할 수 있는 일들이 점점 줄어든다는 것이다. 아니, 틀렸다. 내가 결정할 수 있는 일들이 그다지 많지 않다는 걸, 알아가는 것이다. 군 생활 3년 동안, 나는 고통이 개량화될 수 있음을 알았다. 개량화된 고통이, 더 이상 고통이 아닌 것처럼, 개량화된 삶은, 더 이상 살아있음이 아닐지도 모른다. 원본을 카피해서 부분수정을 가해 완성시키는 수정본처럼, 일상은 대량 복사가 가능하다. 복사하기 붙이기. 복사하기 붙이기. 모든 유기체는, 비유기적인 것을 꿈꾼다. 가령 죽음 같은 것.
나는, 가끔 행복하다. 아마 '가끔'이란 부사는 '행복하다'는 동사, 또는 형용사에게 필수적인 요소라는 걸 인정해야겠다. 그러나, 지금 얘기하고 싶은 것은 그런 게 아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설명하고 싶은 건, '행복하다'라는 것이다. '보드리야르'는 이렇게 말한다. '이 세상의 감옥은, 기실 이 세상이 감옥이라는 사실을 숨기기 위한 상징 또는 장치이다'라고. 이런 말을 들으면, 또는 읽으면 나는 행복하다. 행복하기 때문에, 때론, 거의 이런 경우는 없지만, 가끔 내가 세상을 살아가는 데, 이유가 생긴다. 잘하면, 나는 오래 세상을 살 것 같다. 잘못하면, 아마 대개는 잘못하겠지만, 나는 일찍 죽을 것이다. 이것은 일종의 선언, 슬로건이다. 나는 '지옥'을 믿는다. 그것의 현재성을 믿는다. 내게 필..
어쩐 일인지 최근에 두 번이나 '우는 여자'를 보았다. 둘 다 집으로 가는 전철에서 였는데, 첫 번째는 늦은 밤 막차에서였다. 난 전철을 타면 항상 문 곁의 의자등받이에 기대어 선다. 여자는 맞은편에 있었다. 전화를 걸고 있었고, 듣기만 했다. 전화를 끊고 몇 분 뒤, 여자는 자신도 모르는 채로 눈물을 흘렸다. 적어도 내겐 그렇게 보였다.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느낀 뒤에야, 자신이 울고 있다는 걸 깨달은 것처럼 말이다. 두 번째는 며칠 전이었는데, 전철 안이 아니라 전철을 기다리는 역에서였다. 바지 주머니에 양손을 찔러 넣고, 내릴 역에서 바로 계단으로 이어지는 위치를 가늠하면서 성큼성큼 걷는데, 문득 눈물을 흘리는 여자를 보았다. 오래 울어서 눈은 퉁퉁 불어 있었고, 얼굴을 붉고, 번지르르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