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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재
알아, 소설만 쓰면서 살고 싶다는 게 욕심이란 걸. 모르긴 몰라도, 소설만 쓰면서 살 수 있다고 해도, 나는 그럴 수 없으리라는 걸. 그냥 나는 마냥 게으른 걸. 나는 여전히 어린 아이처럼 어리광을 피우고 있는 걸. 며칠 째 날이 맑고, 담배를 피우러 문리대 2층 동관으로 이어지는 바깥 통로에 서서, 사람들이 오고 가는 걸 바라본다. 오랫동안 꿈을 꾸지 않았다. 사람을 가슴에 품지 않았다. 모든 걸 나이 탓이라고, 모든 걸 날씨 탓이라고 변명을 했다. 다짐 하지 않았다.
최악의 주가 될 것 같다. 왼쪽 눈의 멍은 풀리기는 커녕, 점점 심해진다. 내가 아는 누군가는 눈꼬리 바로 옆에 마치 실수로 흘린 커피자국같은 점이 있다. 근데 그게 오래도록 그 사람을 대하다 보면 익숙해져서 점 같은 게 있는줄도 모르게 된다. 그러다, 함께 찍은 사진을 보면, 그제서야 아 점이 있었지 하고 깜짝 놀라는 것이다. 익숙해짐이란 그런 것이다. 왼쪽 눈의 멍은 이틀이 지났는데 익숙해지지 않는다. 아마 일주일 쯤 되면 익숙해질테지만 그 때쯤 해서는, 멍도 다 풀릴테지. 결국 멍이란 것은, 특히 눈주위의 멍은 아무리해도 익숙해질 수 없다. 익숙해지기 위해선 시간이 필요하고, 시간이 흐르면 멍은 사라진다. 이것이 멍의 메타포다. 코레일 패스에 대해, 어젯밤 인터넷을 뒤져 알아보았다.
도망치고 싶다. 멍이 풀리지 않는다. 거울을 보기가 지겹다. 일주일쯤.
시간은 정말 빠르다. 내 바램은, 시간이 더욱 빨라지거나 멈춰버리는 것이다. 벌써, 2년이나 지났다. 그리고 벌써, 1년이나 지났고, 벌써 반년이나 지났다. 그렇게 해서, 지금 이 순간, 5월 21일. 오늘로써 2000년의 봄도 지났다. 여름은 좀 느리게 지나갔으면 좋겠다. 2000년의 여름은, 이 봄보다 더 느리게 지나갔으면 좋겠다. 내 바램은, 시간이 더 느리게 지나가거나, 더 빨리 지나가거나, 아예 멈춰 버리는 게 아니다. 내 바램은, 삶이 고요해지는 것, 일요일 오후의 구름처럼, 많이 반짝이지 않아도, 아주 고요해지는 것. 그래서 그 시간에 너와 얘기하는 것.
일어났는데, 왼쪽 눈이 잘 안 떠졌다. 얼굴이 퉁퉁 부었군, 생각하면서 만져보았는데 심상치가 않다. 거울을 보니, 누군가에게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시퍼렇게 멍이 들어 있다. 무슨 일일까? 어젯밤, 순대형과 술을 마셨다. 그리고 재영이와 안강을 만났다. 어떻게 된 일일까? 새벽쯤에 오바이트를 했고, 우산을 잊어버리고, 6시에 회기역에서 열차를 탔는데, 언제나처럼 수서에서 구파발까지 몇 번을 왕복했는지, 결국 10시쯤에 남부터미널역에 도착해서 패스를 넣었더니, '안내원에게 문의하세요'라는 경고메시지가 나왔다. 언수형과 권호, 규열이, 정화한테 전화했는데, 결국 정화하고 연락이 닿았다. 그 때가 몇 시였는지 모르겠다. 정화는 너무 늦었다면서 전화를 끊었다. 하루종일 계란으로 왼쪽 눈의 멍을 풀면서, 내가 누..
5.18 이 뭘까, 한참을 생각했다. 학교 개교기념일이 5월 18일 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어, 5.18은...' 이라고 서술어를 찾지 못했다. 하루가 다 지나서야 뭔지 알았다. 신기한 일이다. 소설은 망했다. 다시 읽고, 또 읽어보았는데, '구제'의 길이 없다. 항상 중요한 건 늦게 깨닫는 법이다. 원고지 분량은 다시금 2장이 되었다.
어머니는, 저를 믿는다고 하셨죠. 어떻게 그럴 수 있죠? 나도 나를 믿지 못하는데. 잘못은 비와 같아요. 우린 잘못을 피할 수 없죠. 작은 우산은 우리를 지켜주지 못해요. 잘못은 우리의 뿌리예요. 잘못이 없어지면, 우리도 살아갈 수 없어요. 근데 어떻게 세상이 완전해지리라 희망할 수 있죠? 사람들은, 내게 거짓말을 시켰어요. 잘못했어요. 다시는 안 그럴께요. 어떻게 그럴 수 있죠? 아픔은 용서의 대가가 아니죠. 그렇죠.
다 쓰지 못했다. 지금 이곳은 문리대 교무실. 공짜 커피를 한 잔 뽑아 마시면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오전에는 근무, 오후에는 수업, 저녁에는 술 약속이 있다. 이 '마감'도 펑크의 댓가는 '삭발'인가요? 문득 생각난 건데, 3차원에 시간을 더해서, 4차원인 것 같다. 즉, 우리가 3차원의 세계에서 공간을 규정하는 방식으로, 4차원에서 '시간'을 규정할 수 있다. 시간과 공간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시간이란 결국 공간의 다른 양식일 뿐이라는 것이다. 시간의 공간화, 공간의 시간화. 여기에 바로, 존재의 현존성에 대한 묘수가 있다. 양자역학은 양자의 존재방식이, '확률'에 있다는 것을 밝혀냈다. 단순하게 말한다면, 사물이 우리 앞에 존재하는 것은, 그 사물이 존재할 확률이 존재하지 않을 확률보다 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