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재
다 쓰지 못했다. 지금 이곳은 문리대 교무실. 공짜 커피를 한 잔 뽑아 마시면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오전에는 근무, 오후에는 수업, 저녁에는 술 약속이 있다. 이 '마감'도 펑크의 댓가는 '삭발'인가요? 문득 생각난 건데, 3차원에 시간을 더해서, 4차원인 것 같다. 즉, 우리가 3차원의 세계에서 공간을 규정하는 방식으로, 4차원에서 '시간'을 규정할 수 있다. 시간과 공간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시간이란 결국 공간의 다른 양식일 뿐이라는 것이다. 시간의 공간화, 공간의 시간화. 여기에 바로, 존재의 현존성에 대한 묘수가 있다. 양자역학은 양자의 존재방식이, '확률'에 있다는 것을 밝혀냈다. 단순하게 말한다면, 사물이 우리 앞에 존재하는 것은, 그 사물이 존재할 확률이 존재하지 않을 확률보다 더 ..
원근법이란, 얼마나 놀라운 발견인가? 어렸을 적, 나는 친구의 풍경화를 보고 깜짝 놀랐는데, 나로선 도저히 평면의 도화지에 그릴 수 없었던, 가까운 나무와 먼 나무의 겹침을, 그는 완벽하게 자신의 도화지에 옮겨 놓았던 것이다. 어떻게 평면에 3차원의 공간을 담을 수 있는가? 원근법이다. 소실점이다. 가까운 것은 크게, 멀리 있는 것은 작게, 마찬가지로 가까운 것은 진하게, 멀리 있는 것은 흐리게. 자, 이렇게 해서, 나는 어린 시절 방과후 미술학원을 다니던 친구의 풍경화를, 그린다. 그리고, 이제는 그것이 '사실적'인지 확인한다. 하지만 가만히 보고 있을수록, 그것은 더욱 거짓된 그림에 불과하게 보인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원근법이란 이데올로기구나. 소실점이란 없는 거구나. 그것은 사물의 실제 양식이..
정말로 좋아하는 것은 소유해선 안돼. 이것은 어린왕자의 말이었을까? 정말로, 그러면 안돼? 사실 내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은, 어린왕자가 아니라 야간 비행사였다. 왜 한동안 소설에서 떠나 있었을까? 아니, 그건 아니었어. 나는 말이야, 한 번도 소설에서 떠나 본적이 없어. 내가 말하는 것이, 너한테 부당하게 들릴지 몰라도, 어떤 선험적인 절대성을 얘기하는 것은 아니야. 소설은 언제나 내 '꿈'이었어. 이럴 수가. 참 오랜만에 '꿈'이라는 단어를 입으로 발음해보고, 글로 써본다. 나이가 들면서 부끄러웠던 것 같아. 꿈꾼다고 말한다는 것이. 대신 다른 단어들을 배웠지. 가령, 욕망이라든지, 삶이라든지. 한 인간이 기억할 수 있는, 그리고 자신의 마음 속에 담을 수 있는 단어의 총량은 한정되어 있는 걸까? 그래..
얼마 전에, 아주 오래된 사람에게 편지를 보낼 일이 있었다. 오래된 사람에게 편지를 보내는 일은 아주 어렵다. 왜냐하면, 그도 나도, 정말 오래된 사람이니까. 바로 지금, 그가 그리고 내가, 서로에게 부재로 있는 것이 더 옳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살아간다는 것이, 어떠한 원칙들을 자기 자신에게 확립하는 일일 테지만, 그것을 지킬 수 없는 경우도 있는 법이다. 분명 어떻게 행동해야 한다는 걸 알지만, 술에 취하거나, 순간적인 감정으로, 다른 선택, 다른 행동을 취하곤 한다. 결국엔 후회하고 말지만. 내가 쓴 편지에서, 가장 가슴 아팠던 문구는, '이제는 많은 것들이 달라져 버렸지만'이라는, 부언이었다. 분명히 그렇다. 어떤 슬픔이나 아픔의 존재와, 그것을 '인식'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이를테면 나..
문득, 이전 게시판을 훑어 보게 되었다. 딴은, 재미도 없는 '여성론'이라는 책을 읽는게 지겨워서 였지만, 또 들녘 홈페이지의 디자인이 식상해져서 새로운 업데이트를 해볼까 라는 생각에 빠져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사소한 일에 곧잘 집착을 한다) 1999년 5월 27일, 규열이의 첫번째글, '내가 첫번째다'라는 글을 시작으로 첫번째 게시판 272개, 두번째 게시판 75개, 현재 게시판 767개의 게시물이 '들녘 홈페이지, 문리대 앞 벤치'에 올라와 있다. 그러니까, 총 1114개의 게시물이다. 그리고, 그렇게 1년이 지나고, 나는 또 한 살을 먹었다. 작년 이맘때, 들녘 홈페이지를 만들겠다고, 밤을 새웠고, 정화를 붙들고, 문리대 7층 전산실에 올라가 나모 웹에디터를 가르치고 텍스트화일을 html 화일로..
고백하자면, 내가 좋아하는 음료중의 하나가 '식혜'다. 음료란 것이, 목이 말라서 마시고 싶다는 욕구가 생긴다해도, 굳이 어떤 음료를 마시고 싶다는 생각까지 곧바로 이어지는 게 아니므로, 구멍가게나 편의점 또는 음료 자판기 앞에서는 망설이기 마련이다. 적어도 나의 경우는 그렇다. 통계를 내본 적은 없지만, 당장 이 자리에서 순위를 매겨보자면, 콜라, 파워에이드, 마운틴 듀, 실론 티 등등을 망설임 뒤에 선택하곤 했는데 (최근에는 '이프로'나 '니어워터'도 꽤 맛있다), 이상하게도 '식혜'만은, 음료를 마시고 싶다가 아니라, 곧장 '식혜'를 마시고 싶다로 연결된다. 논리적으로 따져 본다면, '식혜'는 어떤 음료와도 틀리기 때문인 것 같다. 탄산음료도, 과즙음료도 아니라는 것이다. 내가 처음 캔으로 나온 '..
가끔 단 한 장의 풍경으로만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전후 문맥 같은 건 없다. 학교에선 방학식이 있었다. 운동장에 행과 열을 맞춰선 아이들, 터무니없게 쩌렁쩌렁 울리는 단상의 마이크 소리를 들으며, 나는 학교 건물 위 흐린 겨울하늘을 바라본다. 교장선생님의 훈시가 끝나고, 언제나처럼 왼쪽 끝 열, 1반부터 차례로 건물로 들어간다. 그렇게 순서를 정해놓아도 항상 건물 입구는 먼저 들어가려는 조급한 아이들로 이리저리 밀리곤 했다. 건물은 낡아서 습습한 시멘트 냄새가 났다. 담임 선생님이 이런저런 공지사항들 - 방학숙제, 예비소집일, 비상연락망에 대해 얘기하는 동안, 옆 반은 이미 끝났는지 복도가 시끄럽다. 가방에는 금방 받은 가정통신문과 탐구생활이 들어 있다. 교문 밖을 나서 친구들끼리 어깨를 맞대고 함께 ..
돌아왔다. 다시 고등학생이 된 기분이다. 고등학교 시절, 나는 말없는 아이였다. 아니, 원래 나는 말 없는 아이였다. 때로 내 자신의 말없음을 싫어했던, 아이였다. 답사내내, 나는 후배들과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그들은, 나와 전혀 다른 사람이었고, 우리는 서로 대화를 나눌만한 아무런 공통의 화제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게다가, 더욱 중요한 건, 앞으로도 영원히 그들과 나는 전혀 다른 세계에서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갈 거라는 사실이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 나는 그들과 대화를 나누고 싶었나 보다. 답사 마지막 날, 안주도 없이 소주를 반 병 정도 마시고, 숙소를 돌아다니며, 무슨 말이라도 나눌만한 사람을 찾아 다녔다. 새벽이 희부윰하게 밝아올 때쯤, 결국 누구의 이름도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취해서, 방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