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재
단 한번도 하늘을 나는 새를 보면서 자유롭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언제까지나 하늘에 머물 수는 없다. 그들은 바람 속에서 쉬는 법을 알지 못한다. 회기역 승강대 바닥에서 종종 걸음 치는 비둘기를 아이가 쫓고 있다. 아이는 자신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가까이 다가가자 퍼드덕 비둘기가 날아오른다. 새가 지상에서 공중으로 치솟기 위해 몇 번의 날개짓을 해야 하는지, 바람을 타면서 그들의 근육이 얼마나 긴장하고 있는지 사람들은 알지 못한다. 나는 감히 단언한다. 새들은 쉼 없이 퍼덕거려야 하는 날개대신, 지상에서 단단하게 버틸 수 있는 튼튼한 다리와, 먹이를 움켜잡을 수 있는 앞발을 꿈꾼다고.
언제부터인지, 남의 글을 잘 읽게 되지 않는다. 뭐라해도, 이 '문리대 앞 벤치'의 글은 꼭꼭 읽었는데... 최근에는 그렇지 않다. 남의 글을, 문장을 읽지 않으니, 나도 문장을 쓰지 않는다. 사실을 얘기하지면 집중을 하지 않는다. 날씨탓인지 모른다. 무지하게 덥다.
어제 나는 어떤 이에게 이렇게 충고했다. '매일 아침 날씨를 살펴라. 이것이 내 첫번째 충고야.' 말하고 놓고 보니, 근사했다. 그래서 오늘 아침 날씨를 살폈다. 좋은 날씨다. 좋은 날씨는, 생의 가장 큰 선물이다.
아침나절에 비가 내리더니, 금방 또 하늘이 맑아졌다. 열 두시쯤 오후 타임을 다른 조교에게 부탁하고 학교를 내려왔다. 그 시간에는 또 하늘이 흐렸다. 아주 잠깐 하늘이 맑은 사이에, 바람이 시원했었나? 이런 기분이 들었다. 아, 정말 여름이구나. 다시 또 여름이구나. 거의 전철역까지 내려와서 문득 오늘은 좌석버스가 타고 싶어졌다. 하늘이 흐린 탓인지도 모르고, 좀 지쳐서 에어컨 바람이 시원한 좌석버스에 편안하게 앉아 가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군대를 간 사이에 이사를 했다. 원래는 반포동에 살았었다. 그래서, 학교 앞에서 731번을 타면 전철 보다 조금 멀어도 집에 갈 수 있었는데, 이제는 내려서 전철을 타고 두 정거장이나 더 가야한다. 오랫동안 731번을 타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복학한 뒤로, 그..
최근에, '조울증'에 관해 알아봐야 할 일이 생겼다. 그래서 이곳저곳 사이트를 돌아다니다가, 조울증을 양극성장애라고 부르며, 그에 반한 것이 단극성 장애인, '우울증'이란 것도 알게 되었다. 페이지 중에, '우울증 자기진단'이란 게 있어서, 재미삼아 해보았는데, 그 결과를 보고 깜짝놀라고 말았다. 자기진단을 하면서 내내, 질문이 하도 '극단적인' 것들이라, '이거 누가해도 정상이라 나오겠는 걸'이라고 생각했다. 정말로, 나는 최대한 정직하게 답했고, 가벼운 마음이었다. 위의 것이 내가 받은 테스트 결과다. 우습기도 하고, 어이가 없기도 하다. 아마, 모든 사람들에게 '우울증적인 요소가 있는 편'이겠지 라고 생각하면서도, 막상 결과가 나왔을 때 내가 느꼈던 이상한 감정은, 오래 나를 붙잡을 것 같다. 참고..
화요일, 이번 학기 내내 내게 화요일은 공휴일이었다. 수업도 근무도 없다. 이번 학기 내내 화요일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학교 도서관에 자리를 잡으리라 맘먹어더랬다. 내게 몇 번의 화요일이 있었는지... 한번도 학교 도서관에 자리를 잡아 본 적이 없다. 월요일 저녁마다 술자리가 있었던 탓도 있었지만, 일찍 집으로 돌아온 날에도 다음날에는, 화요일에는 어김없이 늦게 잠에서 깨어났다. 일단 하나를 포기하면, 전부 다 포기하게 된다. 악마와 거래를 시작하면, 다 잃든, 다 얻든, 둘 중의 하나일 뿐이다. 대개 다 잃고 말지만. 그래서, 늦게 일어난 날에는 하루종일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약속도 없고, 전화도 없고, 해야 할 일은 언제나 산더미 같지만 의무감도 없고. 이번 학기도 끝이 났다. 그렇게 해서 20..
아, 얘기 못한 게 있다. 서점의 음반 매장에서 역시 오랜만에 테이프를 샀다. 김광진의 솔로 앨범. 몇 번인가, 케이블 TV에서 뮤직비디오를 봤는데, 노래가 끝날 때가지 다른 채널로 돌리지 못했다. 지금 그 노래를 듣고 있다. 오랜만에 - 그러고 보니 오늘은 정말 '오랜만에' 하게 된 일이 많네 - 문장을 쓰고 싶어졌다. 오랜만에 그녀에 대해 오래 생각했고, 그것은 내 삶에 대해서 오래 생각했다는 말과 같다. 항상 문장을 생각하고 있다. 대단한 건 아니다. 대개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그러한데, 집으로 돌아가자마자 샤워를 하고 뜨거운 차를 준비하고 불을 끈 뒤에 내가 쓰고 싶은 문장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이다. 제목은 없지만, 주제는 있다. 가령, 최근의 내가 쓰고 싶었던 주제는 '회기역 승강대의 비둘기..
나는 대개, 그러니까 게시판 같은 경우 문장을 다 적은 뒤에 제목을 붙인다. 게시판에서의 글쓰기란, 원래 제목같은 게 필요없는 법이니까. 그러나 이번 경우에는, 미리 제목을 붙였다. 특별히 의도한 건 아니고, 거의 무의식적으로 제목에 '술 먹은 다음날'이란 문장을 처넣게 된 것이다. 아이고. 제리 맥과이어 라는 영화를 보면, 제리가 여자주인공(이름이 생각나지 않는다)에게 술에 취해 실수를 하고 나서, 그 자리에서 이렇게 말한다.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죠. 술에서 깨고 나면 반드시 후회하게 될 거라는 생각을 미리 하게 되는 겁니다.' 뭐 대충 이런 것이었다. 술에 취해서 어떤 행동을 할 때마다, '너는 이 일을 내일 아침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나?'라고 자문하는 버릇이 있다. 물론, 이건 술을 마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