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재
파트릭 모디아노, "서커스가 지나간다", 용경식, 고려원, 1994. 내가 읽은 모디아노의 다섯 번째 작품이다. '청춘시절'과 '아득한 기억의 저편'과 흡사한 작품이다. 젊은 남자와 여자가 만나고, 거리를 걷고, 카페에 들어가고, 낡은 아파트, 희미하게 비치는 햇살, 벨벳 장의자에 앉아 있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남자들, 여자는 몸을 팔고, 남자는 여자를 구원하려 한다. 그들은 항상 이곳이 아닌 다른 곳으로 가려하지만, 결국은 실패한다. 이 소설은 '내가 열여덟 살 때였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나'는 경찰서에서 심문을 받고 있다. 한가한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는 경찰의 질문에, '나'는 "극장에도 가고 서점에도 갔습니다."라고 대답한다. 그 경찰서에서 여자를 만난다. '나'의 심문이 끝나고 다음차례..
어제 우연히 미국계 보험회사에 다니는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이런 저런 얘기가 오가다, 보험회사를 다니고 있다는 이유로(게다가 미국계 보험회사다) 자연스럽게 9.11 세계무역센터 테러가 화제에 오르게 되었다. 우리의 세속적인 관심은 그 친구 보험회사의 손실액이 얼마쯤 되는지, 또 미국의 손실액이 얼마쯤 되는지 였다. 그런데 그 내용이 다분히 보험업계에 종사하는 사람의 전문적인 의견이라 나로서는 그런가 보다 고개만 끄덕였는데, 결론적으로 미국이 잃은 것보다 얻은 것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는 지적은 흥미로웠다. 거기에는 물론 일종의 음모론이 바닥에 깔려 있다. 정말로 테러를 가한 것이 빈 라덴일까? 자작극은 아닐까? 뭐 이런 얘기다. 미국 GDP의 십 몇 퍼센트가 군수산업이라니, 테러로 무너진 건물을 다시 올..
'공일오비'를 말하는 것은 내게는 결코 객관적일 수 없다. 하긴 무엇이든, 우리가 완벽하게 객관적일 수 없는 일일 테지만, 특별히 더 그러한 것들이 존재하는 법이다. '공일오비'의 첫앨범이 발매된 건 89년이거나 90년일 것이다. 확인해보면 정확한 연도를 알 수 있겠지만, 정확한 연도 따위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내가 공일오비의 존재를 확실하게 알게된 건 그들의 2집을 통해서였다. 1991년 발매. 그 즈음 나는 고등학생이었다. 예전에도 얘기했던 것 같은데, 고등학교 때 같은 동네에 살던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가 좋아했던 교회의 어느 여자와 관련된 몇 가지 특별한 기억이 있다. 놀랍게도 나는 아직 그 여자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다. (십 년 전의 내가 사귀지도 않았던 여자의 이름을 말이다.) 그녀의 이..
예전에 나는, 내 성격이 '이것' 아니면 '저것', 혹은 '모' 아니면 '도'인 줄 알았다. '전부'가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 내 삶을 돌이켜보고, 현재의 내 자신을 바라볼 때, 이러한 결론을 받아들여야겠다. 나는, 언제나 '아무것도 아니었다'. 단 한번도, 나는 나 자신외에 아무것도 아니었고, 나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요즘 내가 빠순이가 됐다. 누군가의 말을 빌면, 사이비 '빠순이'에 불과하지만, 게다가 '빠순이'가 '오빠순이'의 준말이라면, 나는 '동생돌이', 즉, '생돌이'가 정확한 표현일테지만. 어쨌거나. 그 대상은 '이가희'. 그녀가 나왔다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인터넷으로 찾아 들었다. 그것도 한 번이 아니라 두 번이나! 매일 같이 그녀의 홈페이지에 들어간다. 그녀와 관련된 글이라면 빼놓지 않고 읽는다. 어서 빨리 그녀가 티브이에 나왔으면 좋겠다. 어서 빨리 그녀가 가요 순위 프로그램에서 1위 먹기를 바란다. 비록 지금은 mp3 다운받아 cd로 구워서 듣고 있지만, 진정한 '빠순이'가 되기 위해 내일은 정식음반 시디를 구입할 예정. "그 누가 뭐라고 말을 해도 가햐는 내게 머라이어~" +) 진정한 빠순이의 길은 ..
1997년 6월 12일. 내가 2년 2개월의 군복무를 마치고 제대한 날이다. 그로부터 약 넉 달 간, 나는 같은 동네의 친구와 함께 차를 타고 학교에 다녔는데, 우린 둘 다 다음 해에 복학하기로 되어 있었다. 기억이 틀리지 않았다면 그 시절은 S.E.S의 1집이 한창 방송을 타던 때였다. 우리는 아침마다 그 노래들을 반복해서 들으며, 강변을 따라 달렸다. 학교에 도착하는 건 아침 여덟 시쯤이다. 가방을 자리에 놓고 자판기 커피를 한 잔 뽑아서, 도서관 앞 돌층계에 앉는다. 주위는 환했지만 아직 태양은 충분한 높이로 올라서지 않아 지표에는 햇빛이 비치지 않았다. 하나 둘 씩 가방을 멘 학생들이 도서관 앞 길을 따라 올라왔다. 그들 중 내가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 시간을 좋아했던 것 같다. 내가 좋아했..
한밤중에 담배가 떨어져 본 사람은 알 거야. 그 시간에 담배를 사려면, 조금 멀다 싶은 편의점까지 걸어나가야 하고, 무엇보다 옷을 챙겨입고 나가기가 귀찮은 거야. 그런 때는 꼭 이렇게 생각하지. 다음 번에는 꼭 예비로 담배 한 갑 정도는 책상에 챙겨둬야지 하고. 실제로 소위 예비 담배라는 걸 챙겨두었던 적도 있었는데, 글쎄, 그게 과연 담배가 떨어졌을 때를 대비하는 올바른 방법이었는지 회의적이란 말이야. (그래서 담배가 떨어졌을 때, 아 나한테는 예비 담배가 있다 하고 흐뭇해 한 기억이 없으니까) 우리가 미래를 대비해서 무언가를 챙겨 두는 게 가능한 일일까 하고 말이야. 어떻게 생각해?
파트릭 모디아노, "아득한 기억의 저편", 연미선, 자작나무, 1999 이 소설의 원제목은, "Du plus loin de l'oubli"(망각의 가장 깊은 곳으로부터)이다. 그 뜻을 손상시키지 않고, 나름대로 그럴듯하게 우리말 제목으로 바꾼 셈이다. 모디아노의 대개의 소설이 그러하듯이, (혹은 그러할 거라고 짐작하듯이), 이 작품 역시, '잊음(잃음)'의 테마를 변주하고 있다. 그것은 역시 하나의 공간을 고스란히 그대로 담고 있는 시간의 잃음이다. 그러나 그 '잃음'은 단순히 '흘러가는 시간'이라는 일반적인 그것을 넘어서, 어쩌면 인간 실존에 숙명적으로 새겨져 있는 어떤 '빈 곳'을 지적하고 있다. 모디아노는 그래서 '어두운'이나, '사라진', 또는 '희미한'이란 형용사에 주목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