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2000/01 (8)
시간의재
뭔 일이 있었던가? 다행이다. 난,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내가 정화를 구박했다고? 다행이다. 난, 내가 정화를 사랑한다고 고백한 줄 알았다. (술 취하면 난 모든 여자를 사랑한다) 그리고, 다들 저런 말투를 어디서 배운 걸까? 신기하다. 졸업생게시판이나, 문리대 앞 벤치거나, 이상한 무협지 말투가 유행이다. 그 말투를 쓰지 않고 글을 올리려니, 마치 벌거벗은 것 같다. 나도, 어서 빨리 배워야겠다. 아무튼, 내가 하려는 말은 또 변명이다. 수요일 저녁까지 발제를 올릴 수 없을 것 같다. 목요일 저녁까지 올리겠다. 자야지.ps : 난 밑의 정화 글을 읽고 누군가 잘못 이름을 쓴 줄 알았다. 일종의 게시판 버그라든지. 정말로, 정화가 저런 글을 쓰다니. 왠지, 그 글을 쓰고 있을 당시의 정화의 얼굴을 ..
요즘의 난, 파이프 오르간 같은 것을 생각한다. 아주 길고 거대한 관이 있어서 그 안에 바람이 불고, 그 바람들이 서로 몸을 부딪히며 아름다운 소리를 만들어 낸다. 멋지지 않은가? 또 슬프지 않은가? 소리는 깊고 또 그윽하며, 오래 지상에 머문다. 하지만, 난 한번도 그러한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 내 삶의 시간이 그렇게 길고 거대한 관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하여, 나의 모든 행위가 의미를 만들고, 서로 격렬하게 부딪히며 어떤 소리를 만들어 낼 수 있으면, 좋겠다. 월요일 아침, 라디오 방송을 통해 음악을 듣다. 거울을 볼 때마다, 내가 너무 멀리 왔음을 깨닫는 즈음.
나이 스물 여덟 먹고, 이 나이에 아직도 술 먹고 날밤 샌다는 게 어디 자랑이겠냐 싶은데, 내 나이가 스물 여덟이면, 누구 나이는 스물 아홉이라는 사실이 나를 고양시킨다. 또 필름이 끊겼다. 아, 대개 일 년에 여닐곱번 정도 필름이 끊기는데, 2000년 들어서는 처음 있는 일이다. 무슨 일이 있었는가? 단지, 기억에 남는 건 빈 손으로 터벅 터벅 내게 다가오던 규열이의 모습뿐이다. 지금도 웃었다. 생각할수록 규열은 대단한 놈이다. 나야, 되지도 않는 말발로 사람들로 하여금 실소를 머금게 할 뿐인데, 규열은 온 몸으로 사람을 즐겁게 하는 재주가 있다. 어쩐지, us의 말, 규열은 '사내가 사는 법'을 알고 있다는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글은 일종의 변명이다. 아니, 어쩜 전적인 변명이다. 어떠한 텍스트를 이해한다는 것과, 그것을 완벽하게 새로운 판으로 다시 짜낸다는 것은, 양적인 차이가 아니라, 엄연한 질적인 차이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고 있다. 물론, 완벽하게 이해한다는 그 자체가 이미 어불성설이겠지만. 난 지금, 규열에게 수요일 밤까지 발제를 올린다고 선배답게 말했지만, 아직껏 올리지 못하고 있다는 변명을 하고 있는 거다. 아무튼, 나 자신에게 하려는 약속처럼, 조금씩 [세미나]에 올려본다. 일단, 가장 쉬운, 1장부터. 아마, 내일 아침까지는 완벽하게 5장까지 올릴 수 있을 거라 조심스레 추측하면서, 만일 그렇게 된다면, 이전에 올렸던 것들을 다시 싸그리 끄집어내려 합본을 낼 예정이다. 그러니까, 지금 이 시간 ..
알아, 행복이란 삶의 어느 특정한 시간에 대해 우리가 품고 있는 호의의 자세이다. 이것은 일종의 대안이다. 때론 자기자신을 속이는 기술이 필요하다. 만일, 우리의 삶이 모두 우리의 마음먹기에 달려있다면, 거기엔 항상 부조리 또는 불합리의 요소가 숨어있다. 즉, 삶이란 본래적으로 행복하지 않은 게 아니라, 행복이 없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마치, 누구도 비도덕하지 않고, 다만 무도덕한 것처럼. 행복이란, 그리하여 상상력과 자기기만이 필요한 일종의 창조의 행위이다. 다만, 이러한 행위에서 경계해야 할 것은, 행복에 가치를 부여하는 일이다. 위계질서를 세우려는 시도이다. 더 행복하고, 덜 행복하고, 누구누구보다, 혹은 어떤 때보다 등등. 우리가 행복해지기 위해선, 행복을 양자택일의 세계 속에 편입시켜야 한다..
세미나를 통해서 이미 했던 말이지만, 개인적으로 다른 사람의 작품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얘기하는 것이 점점 힘들어진다. 무엇보다 한 편의 소설을 읽고 내가 느끼는 감정, 또는 평가가 구체적으로 어떤 근거를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그것이 과연 보편타당한 원칙 위에 근거하고 있는지 잘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보편타당한 원칙 같은 건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그렇다해도 역시 문제는 나라는 한 개인(비록 엉성하지만 소설을 쓰려고 하는 소설 지망생)이 소설이나 소설의 문장에 대해 가지고 있는 확고한 원칙이고, 그 원칙에 대한 개인적인 믿음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내가 가진 원칙은 불분명하고, 내 자신조차 신뢰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세미나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와 '미색 붙박이장'에 대해, 여..
벌써 내일이 예정되었던 세미나다. 규열의 전화를 받았다. 일정대로 진행되지 못할 것 같다는 말. 여전히, 작품은 나오지 않고. 모두들 바쁜가보다. 하긴 영어학원을 다니랴, 아르바이트를 하랴, 학원강사를 하랴. 바쁘지 않은 사람은 나 밖에 없는 것 같다. 나만 여전히, 느즈막히 일어나 담배 한 대를 물고, 음악을 듣다가 답답하면 집밖을 나와 날씨를 살핀다. 멀리까지 걸어가 본다. 막 끓여낸 커피 잔을 들고 방으로 들어가려다, 문득 TV를 보게 되었는데, 시간을 기다려서 보진 않더라도, 항상 재밌게 보던 만화가 하고 있었다. 만화제목은 모른다. 수달, 다람쥐, 너구리 등등, 동물 캐릭터가 나오는 만화다. 주인공 격인 수달이 오늘도 '어째서' 병에 걸려 친구들에게 묻는다. '어째서, 즐거운 일은 끝나는 걸까?..
또, 며칠동안 공중에 떠 있는 것처럼 보냈다. 홈이 없는 스위치를 돌리듯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하루하루가 지났다. 몇 가지 일들이 있었지만, 역시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고등학교 3년 내내 난, 수요일을 가장 좋아했다. 수요일엔 HR 시간이나 특별활동 시간이 있었고, 내 정확하지 않은 기억으로 다른 날에 비해 한 시간 일찍 모든 수업이 끝났다. 한 시간 일찍 집으로 돌아오는 걸 좋아했다. 그리고, 아 오늘은 수요일이고, 이제 목요일과 금요일만 지나면 주말이 돌아온다는 걸 알았다. 휴식이다. 얼마나 많은 수요일을, 또 얼마나 많은 수요일의 하교길을 걸었던가? 난 그렇게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고, 성장했다.아직도 난 그 하교길의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다. 교문을 나와서, 육교를 건너고, 아파트 단지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