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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재
안녕, 나의 사랑 안녕, 나의 행복 외로움이 날 반기네 난 울 것만 같아.
무슨 이유든 간에, 내게 기댄 사람의 무게를 느낄 때 나는 정말 알 수 없는 기분이 든다. 무게는 구체적인 것이다. 나는 그것을 분명히 느낄 수 있다. 농담으로 흘릴 수도, 괜히 폼나는 척 멋진 말로 얼버무릴 수도 없다. 마음이 서늘해진다. 물론 금방 그 무게는 사라질 테지만, 그 무게의 느낌은 지울 수 없다. 그래서 어떻게든 그 무게에 대해 '규정'해야만 한다. 나는 자주 사소한 일로, 오랜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사소하다는 것은, 내 친구의 표현이다.
브레이크. 속도를 줄여야 한다. 속도를 줄이고 표지판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필요하다면 차를 멈추고 사람들에게 물어봐야 한다. 커브다. 속도를 줄여야 한다. 어차피 옆자리에는 아무도 없다. 혼자 떠들고 있을 뿐이다. 나는 아무데도 가고 있지 않아.
인생의 편리한 점은, 무엇이든, 우리를, 어디로든, 데려다 준다는 것이다. 눈 깜짝할 사이에. 단지 곤란한 점은 결국에는 다시 돌아와야 한다는 것이지만, 그 놀랄만한 편리함에 비하면 그 정도의 곤란함은 무시할 수 있다.
그런 여자가 있다. 평소에 만나면 그저 그런데, 전화통화를 하거나 술을 마실 때 훨씬 더 친밀감을 느끼게 되는 여자가 있다. 더 잘 말할 수 있게 된다. 대화의 화제가 끊이지 않고, 술은 맛있다. 그게 좀 이상한데, 실제로 애인이었던 여자와는 전화통화를 해도 술을 마셔도 그저 그런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애인이라는 관계가, 모든 부분에 있어 항상 최상인 것은 아니다. 전화친구나, 술친구란 게 있는 것이다. 아니면 애인이라는 관계로 발전하게 되면, 나는 대화가 아니라 다른 것(?)을 추구하게 되는지 모른다. 나란 인간은, 참. 그건 내가 대학교 1, 2학년 때 일로, 군대를 갔다 오자 내 주위에 그런 여자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아니, 그렇게 되지 않았다. 애인이 아닌 여자와 단 둘이 ..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 집에 도착하면 바로 방청소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딴에는 방청소를 말끔히 끝마치고 나면 뭔가 새롭게 시작하는 기분이 들 것 같아서였다. 마지막 리포트를 끝으로 이번 학기도 완전히 끝이 났다. 모두가 퇴근한 과사무실에서 한참을 있었다. 담배도 태우고 음악도 듣다가 발이 시려 불을 끄고 사무실을 나왔다. 그러나 언제나처럼,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생각하는 모든 생각들이 생각으로 그치고 마는 것처럼, 나는 방청소를 끝마치지 못하고 또 게으르게 시간을 보내고 밤 12시를 넘겨버린다. 불평할 처지가 아니다. 이것은 최근의 내 혼잣말. 불평하지 않겠다는 게 아니라, 불평할 처지가 아니다. 맞는 말이다. 지금의 내 처치는 확실히 불평하기에 너무 사치스럽다. 나는 완벽한 것을 추구했던가? ..
메시지가 왔다. "오빠가 전에 했던 말 진심인지 다시 묻고 싶어졌어, 기억나?" 번호는 모르는 번호다. 물을 한 잔 마시고, 컴퓨터를 켜고, 카세트 데크의 플레이 버튼을 누른다. 회신전화번호대로 전화를 걸었다. 금방 전화를 받는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여보세요." 세 번쯤, 그 정도 듣다가 전화를 끊었다. 내가 모르는 목소리다. 내가 모르는 목소리인데, 자꾸만 내가 아는 목소리를 닮아 가는 것 같아, 전화를 끊었다. 어리석다.
친구의 결혼식에 갔다 왔다. 친구 중에 처음이다. 물론 친구가 아니라, 형제거나, 여자 동기거나, 또는 잘 모르는 사람의 결혼식을 참석한 경우는 있다. 매번 결혼식에 참석할 때마다, 그래서 신랑과 신부가 입장하고 주례사가 있고, 마침내 피로연장에서 어쭙잖은 식사를 할 때마다 나는 한없이 그 자리가 불편하고 지루하고 어색해진다. 딴은 이제 막 결혼식을 올린 사람을 내가 잘 모르기 때문일지도 모르고, 딴은 잘 모르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건 이런 느낌이다. 가령 나는 오늘 그 친구를 항상 개인적인 자리에서만 만나왔고, 단 한번도 그의 가족들이나 다른 친구들과 함께 있는 걸 본 적이 없는 것이다. 그럴 때, 그 친구는 내가 전혀 모르는 낯선 사람처럼 느껴진다. 아니, 그건 느낌이 아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