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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재
날씨가 따뜻해졌어. 노천스탠드에 앉아 햇볕을 쬤지. 오랜 버릇이야. 볕이 좋은 오후에, 문리대 로비에서 커피 한 잔을 뽑아서 노천스탠드로 나가지. 담배를 피우기도 하고, 아침마다 아무렇게나 집어들고 온 소설책을 읽기도 하고, 아무 짓도 안하고 아무 것도 보지 않고 앉아있기도 해. 햇볕 하나로 사람이 행복해질 수 있다는 건 그다지 놀라운 일이 아니야. 그것이야말로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 유일한 것이 아닐까? 아주 행복해지지.
아무 이유 없이, 밤을 새우게 되네. 이렇게 말이야. 특별히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닌데, 해야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잠이 안와서 말이야. 누군가 그러던데, 밤을 새우면, 그 피로가 한달을 간다고. 그래서 내 생활이 항상 엉망인지도 모르겠고. 군에 있을 때, 참 문장을 잘 썼던 쫄따구가 있었지. 키도 홀쭉하니 크고, 얼굴도 샤프한 것이, 직접 자신의 입으로 말하지 않더라도 사회에서 여자 꽤나 울리고 다녔을 것 같은 녀석이었는데, 문장들이 참 좋았어. 그래서 제대하고 나올 때, 그 친구 노트를 훔쳐서 들고 나왔지. 근데 그 녀석 말이야, 군대에 적응을 잘 못했어. 항상 위태롭게 보였고, 결국에는 무슨 이유인지 몰라도 '후송'을 갔는데 그 다음에 내가 제대할 때까지 돌아오지 않았지. 그래서 녀석 ..
소설가가 자신의 작품을 더 이상 수정하지 않을 때는, 작품이 더 이상 손볼 데가 없이 완벽해진 때가 아니라, 작품에 질려버린 때다. 완전히 흥미를 잃어버린 후에야, 소설가는 수정을 그친다. 완전함이란 결국, 그런 것이다.
꾸미다는, 꿈에서 파생된 말일까? 아니면, 꾸미다에서 '꿈'이 파생된 것일까? 그래서, 언제나 꿈은 '꾸며낸' 것인가?
확실히 그렇다. 사물의 이름에는, 뭐라해도 나름의 이유가 있는 것이다. '아침햇살'을 저녁에 먹었더니, 소화가 되지 않는다. 대체 음료수를 마시고 소화가 되지 않다니. '아침햇살'은 아침에 먹어야 한다. 아무 이유 없이, 햇볕에 바짝 마른 모래가 생각났다. 처음에는 그 색깔이 떠오르더니 - 그것은 마치 햇볕 그 자체인 것처럼 하얗다 - 나중에는 손가락 사이로 그 모래가 흘러내리는 촉감까지 분명하게 떠올랐다. 막연하게 생각하기를 이것은 일종의 상징으로, 현재 내 삶의 어떤 양태를 드러내주고 있을지도 모른다. 꿈 같은 것이다. '햇볕에 바짝 마른 모래.' 이건 마치 화장하고 남은 재 같지 않은가?
잘 몰랐는데, 문득 보니까 3월이다. 2월이 끝난 줄도 모르고. 3월이다.
'사랑하기 좋은 날', 이건, 내가 서명을 한, 몇 안되는 한국영화중의 하나다. 그러니까, 플룻이니 카메라 워크니, 미장센이니 배우들의 연기니를 따지는 영화의 완성도를 떠나, 순전히 개인적으로, '좋은 영화'라고 생각하는 영화다. (반대로 말하면,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자면, '좋은 영화'라는 판단에는 미심쩍은 구석이 있다.) 아마 이런 영화를 로맨틱 코미디라는 부류에 집어넣을 수 있을 텐데,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이나, 뭐지, 장돈건이랑 김희선이 나왔던 제목이 기억나지 않는 영화를 생각하면 이 영화의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언급한 영화들보다, 장점이 더 많은 영화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말이다. 어떤 장면이 기억에 남냐면, 최민수(또 개인적으로는 최민수는 이런 영화에서 훨씬 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