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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재
아래 제가 쓴 ‘물고기통신 59’를 올려놓고 다시 한번 읽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모기를 잡음으로써 뭔가를 증명하려고 했던 것이 아닐까? 최근에 누군가에게 제 소설에는 ‘나’가 너무 많다, 또는 강하다, 라는 얘기를 들었는데, 그 말이 옳다면, 즉 그가 제대로 읽은 거라면, 그것은 내가 문장을 통해서 ‘나’를 증명하려고 했기 때문이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듭니다. 물론 그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닐 겁니다. 어떻게 사는 게 정말로 현명한 삶인지 누가 알겠습니까? 스무 마리의 모기 시체를 마루바닥에 모아놓고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분명 거기에는 허무 같은 게 느껴지지만, 산다는 것이 어떻게 뭔가를 성취함으로써만 행복할 수 있는 것이겠습니까?
어제 저녁 마루에서 티브이를 보다가, 작정하고 모기를 잡기 시작했습니다. 훈증 홈매트도 떨어지고, 뿌리는 모기약도 다 떨어진 탓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이제 더 이상 여름도 아닌데 앵앵거리는 모기 소리를 참고 있을 이유가 없었던 탓입니다. 가을이 되어서까지 모기에게 피를 뺏기고 싶지 않았습니다. 추석이란 말입니다. 그래서 일일이 수작업으로 잡은 모기가 근 스무 마리를 넘었습니다. 열 마리를 넘기면서부터 제가 뭔가 단단히 착각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때껏 저는 한 마리를 잡으면 당연히 집 안의 모기가 한 마리 줄어든다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창에는 방충망이 쳐져 있고, 바깥으로 통하는 출입문도 닫혀 있었으니까요. 과연 진실이 어떤 건지 알 수 없지만, 열 마리, 그리고 종국에는 스무 마리의 모..
날이 추워졌습니다. 저녁이면 이제 제법 쌀쌀한 바람이 불고, 지난 가을의 기억도 떠오릅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이렇게 날이 추워지기 시작한 건 고작 며칠 전의 일인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그 며칠 전만 해도 이렇게 갑자기 가을이 올 줄은 몰랐습니다. 한편으로는 참 이상하고 신기한 일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언제나 그래왔던 일입니다. 약속 시간을 잘 지키지 못하고, 해야 할 일의 기한을 잘 지키지 못하는 성격의 저로서는, 이런 계절의 변화란 것이 때로 마음을 불편하게 하기도 합니다. 계절은 참을 성 없는 여자친구 같기도 하고, 매정한 창구 직원 같기도 합니다. 이봐, 조금 늦을 수도 있잖아. 그것 가지고 뭘 그래. 이런 말이 통하지 않습니다. 안됩니다. 어저께 왔더라면 아무 문제도 없었을 걸, 지금 와..
나는 참 시시한 인간이구나, 라고 생각합니다. 언제부터인지 알 수 없지만, 하루에도 몇 번씩, 아, 시시하다, 나는 참 시시하다, 중얼거립니다. 아, 시시하다. 그 마음이 화가 나는지, 슬픈지, 아니면 그저 그런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다 해도, 그 마음이 두렵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저의 두려움은, 그 시시함이, 내 자신의 잘못에 대한 변명이 되지나 않을까에 있습니다. 시시한 인간은 시시한 짓이나 하면서 살아야 하는데, 자꾸 욕심을 냅니다.
십년. 뻔한 얘기 같지만, 십년이란 시간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세월이다. 특히 그것이 한 인간의 이십대 시절일 경우 더욱 그렇다. 우리는 잔디밭이 넓은 어느 공원 벤치에 앉아있다. 공원에 들어서면서 나는 그녀에게 뭐 좀 마시겠냐고 물었다. 그녀는 커피를 마시겠다고 했다. 따뜻한 커피. 나는 공원 초입에 있는 조그만 간이매점에서 직접 타 주는 커피 두 잔을 산다. 그것은 우리의 두 번째 만남이었다. 그녀가 얘기를 끝마쳤을 때, 그것은 약 두 시간이 흐른 뒤였다. 십년의 얘기를 두 시간동안 한다는 것이, 짧은 건지 긴 건지 알 수 없었다. 만일 할 수만 있다면 여러 사람들을 만나 그 평균값을 구할 수도 있을 테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녀의 십년이 어떤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어떤 경로를 통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