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2002/02/21 (2)
시간의재
타인을 비난하는 것은 참 쉬운 일이지만, 또 그만큼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비난의 쉬움은, 그 비난의 감정이 마음의 얕은 곳에 있기 때문에 별 다른 노력 없이 쉽게 끄집어 올릴 수 있다는 데에 있고, 어려움은 그 비난이 아무런 가치가 없다는 데에 있습니다. 그러니까 누군가를 비난하고자 할 때, 거기에 노력을 기울여 힘을 쏟으려 할 때마다, 과연 그것이 그만한 가치가 있는가, 그렇게 해서 비난하는 자신이나, 그 비난의 상대에게 무슨 도움이 될 것인가를 생각해본다면, 거기에는 온전한 소모 밖에 없다는 깨달음을 누구라도 얻을 수 있습니다. 비난은 아무것도 생산할 수 없습니다. 마음의 얕은 곳에 있는 감정을 취하는 사람은, 결국 그 마음이 얕아지고, 깊은 곳으로 들어갈 수 없게 됩니다. ‘물고..
차로 여자를 데려다 줄 때마다, 여자의 집 근처에서 항상 걸리던 신호등이 있었다. 아니, 항상은 아니다. 간혹 가다 그 신호에 걸리지 않고 통과할 때마다 즐거워했던 기억도 있다. 그 신호는 큰길에서 우회전으로 꺾어진 뒤 짧은 터널을 통과해, 우리가 달리던 큰길과 나란히 놓여 있는 또 다른 큰길과 만나는 사거리 신호등이었다. 터널이 지면보다 낮게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차가 신호에 걸려 정지한 지점은 경사의 꼭대기였다. 차는 금방이라도 뒤로 미끄러질 것처럼 위태롭다. 신호는 길었다. 나는 핸드브레이크를 힘껏 잡아당겨 걸고, 클러치에서 발을 떼고, 여자 쪽을 바라본다. ‘다 왔어.’ 라고 말한다. 그때 여자가 나를 보며 지었던 표정을 기억하고 있다. 참 많은 것들을 잊어버렸지만, 나는 아직 많은 것들을 기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