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2001/06 (14)
시간의재
이유는 잘 설명할 수 없다. 나는 야간 화물트럭 운전사가 되고 싶다. 물론, 나는 그게 뭔지 모른다. 실제로 야간 화물트럭 운전사는, 내가 생각하는 그것과는 판이하게 다를 것이다. 나는 밤새 달려서 꼭 가야할 곳이 있었으면 좋겠다. 내가 가고 싶은 곳이 아니라, 가야만 하는 곳이다. 가보았댔자, 그저 화물을 내려주고, 혼자서 뜨거운 국물에 밥을 말아 먹고, 담배를 한 대 피우고, 다시 되돌아와야 할 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보람이 있다. 나는 그곳에 가야만 했었고, 갔다. 아무것도 판단하거나 선택할 필요가 없다. 내가 가야할 곳은, 이미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모도시'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분명, 일본말일텐데, 우리나라말로 바꿔보면, '똑바로', '반듯이', '일렬로'쯤 되지 않을까 싶다. 나는 이 말을 운전을 배우면서 처음 알게 되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차를 몰고 다녔고, 운전병 출신인 친구 녀석이 내게 '운전을 잘하려면 모도시를 잘 해야해'라고 말했다. 말 그대로, 모도시는 앞바퀴를 '똑바로', '반듯이', '일렬로' 되돌려 놓는 것을 말한다. 가장 기본적으로는, 면허시험 코스에도 있는, T자 코스, 후진 주차의 경우에 모도시가 쓰인다. 차를 멈춘 상태에서 운전대를 한방향으로 잔뜩 꺾어 후진으로 ㄱ자 형태로 코스에 들어가게 되는데, 뒤바퀴가 들어가는 방향과 일렬이 되면 앞 바퀴도 따라 일렬로 맞춰주는 것을 말한다. 그렇지 않으면 당연히 차는 후진으로 ..
수업시간에 또 멍하니 앉아 있다가, 이런 노래가 떠올랐네. '즐겁게 춤을 추다가 그대로 멈춰라' 이게 동요였던가? 아무튼, 요즘의 내가 그런 기분일세. 어느 교수가 무엇을? 어떻게? 누구를 위해? 라는 질문을 칠판에 썼었지. 나 또한 그러한 질문에 대한 답을 한동안 찾고 있었던 것 같네. 하지만, 자네도 알다시피 거기에 정답이 있겠는가? 우리가 무엇을 규정할 수 있단 말인가? 그저, 즐겁게 춤을 추는 수밖에. 왜 춤을 춰야 하는지? 이 즐거움이 어디서 오는지? 누구를 위해? 어떤 춤을? 수많은 질문을 만들어보지만, 정작 난 춤을 추고 있지 않았던 걸세. 춤을 추지 않는 사람이 어찌 그 답을 알겠나? 내 말의 포인트는 이걸세. 언젠가 멈춰서 생각해 봐야겠지. 하지만, 그 전에 춤을 춰야 한다는 거라고. 멈..
가끔 그러는 것처럼, 이전 게시판에 들어가 닥치는 대로 글들을 몇 개 읽었다. 바로 이전 게시판의 첫글은 1999년 12월 12일날 내가 올린 글이다. 거기에는 졸업논문이 쓰기 싫다고 적혀 있다. 그렇지. 그 때 나는 대학 4학년, 졸업을 앞두고 있었지. 총 2205개의 글들이 있는데, 그게 1999년 12월 12일 부터 시작해서, 다음 다음해, 그러니까 2001년 5월 14일까지 올라온 것이다. 거진 1년 반 동안이다. 초기의 글들을 살펴보면, 지금은 군대에 가 있는 99학번 백동현의 글이 반갑다. 99학번, 내가 들녘에 다시 들어간 게 99년도였다. 어떻게 보면, 그 해 들녘에 들어왔다는 점에서는 나와 같다. 보미와 동기라는 것도 신기하다. 그리고 곧 이어, 2000년 봄에는, 00학번들의 이름이 등..
아침 8시에 카페의 문을 열어주기 위해 잠에서 깼다. 다시 잠들지 않기 위해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약 2시간을 더 잤다. 이상한 일이다. 이럴거면 차라리 침대에 누워서 잘 걸 후회하면서, 욕을 하면서 침대에 몸을 던졌다. 그리고 침대에서 약 3시간을 더 잤다. 일어나보니 1시다. 몸이 약해진 건지, 마음이 약해진 건지 알 수가 없다. 내가 자대에 배치를 받은 것이 6월 쯤 되었으니까, 아마 첫 면회는 6월 말이나, 7월 쯤이었을 거다. 어머니는 아주 차갑게 식힌 비락 '식혜'캔을 내게 건네주었고, 나는 이제 식혜도 캔 음료로 나오네 라고 새삼스러워했다. 고작 두 달 정도 지났을 뿐인데, 그깟 캔 식혜에 내가 세상과 아주 오래, 멀리 떨어져 있었던 것처럼 느꼈다. 그 날 밤 내내, 나는 빗소..
이 홈페이지의 디자인은 사실 다른 사람의 것을 흉내낸 것에 불과합니다. 항상 그렇듯이 말이죠. 이렇게 자꾸 흉내내다 보면 언젠가는 스스로도 뭔가 그럴듯한 것을 만들 수 있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넌 대단한 걸 잃어버린 양 호들갑을 떨지만, 마치 세상 전부를 잃은 것처럼 말이야. 허나 네가 잃은 건 그녀가 네게 주었던 '다정함'일 뿐이야. 하나의 사랑도, 4월의 100퍼센트의 소녀도, fresh한 겐조 향수내음도, 자주 쓰다듬던 머리칼도, 매끄러운 피부의 감촉도 아닌 여자의 친절한 배려, 다정함, 그리고 너도 알다시피 그건 이미 사라졌어. 오래된 책에서 10년전의 나뭇잎 책갈피를 찾아내듯 찾을 수 있는 게 아니야. 하지만 괜찮아. 누구나 알겠지만 '다정함'에는 개성이 없지. 더 예쁜 다정함이 없듯이, 더 못난 다정함도 없고, 호감이 가는 다정함, 혹은 사람을 불쾌하게 하는 다정함도 없어. 다정함은 다정함일 뿐이라고. 물론 꼭 같진 않겠지만 그녀가 줬던 그만큼의 다정함은 언제든 구할 수 있을거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