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2001/04 (13)
시간의재
근사한 말을 알고 있다. '세상은 아름다운 곳이고, 싸워볼 만한 가치가 있다.' 이 말의 의미는, 세상은, 오직 싸워볼 만한 가치밖에 없다는 뜻이다. 그 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 그러나 아무 것도 없다는 말이 가지는, 일종의 무력감이나 절망감은 나의 의도가 아니다. 차라리 거기에 포함되어 있는 감정은, 희망이거나 즐거움이다. 이 싸움에는 명분도 적도 없기 때문이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정해진' 명분도 적도 없다. 싸움이라는 형식이 그러한 것들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무엇이든 간에, 그것은 지극히 편의적인 것에 불과하다. 마치 자신의 그림자를 향해 펀치를 날리는 쉐도우 트레이닝처럼 우리는 가상의 적과, 나중에는 분명 잊어버리게 될 사소한 명분을 위해 싸운다. 이것은 원인과 결과를 전도시킨 것에 지나지..
누구나 스물 아홉 살이 된다. 스물 아홉 살이 된다해서, 세상이 달라지는 것도, 더더군다나 자신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스물 아홉 살이 아니라, 스물 살, 열 다섯살이라해서 더 맑은 영혼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 별 소용도 될 것 같지 않은 세상의 기억을 조금 더 가지게 될 뿐이다. 강이 더 먼 곳까지 흐른다해서 언제나 바다가 되지는 않는 것이다.
내 소설 {리와인드}를 다시 읽다. 작가 또한, 독자라면, 게다가 작가의 의도를 가장 잘 간파하고 있는 독자라면, 자신의 작품을 읽고 재밌다고 느끼는 건 계속 작품을 쓰도록 만드는 힘이 아닐까? 재밌다. 문득 {리와인드}를 좀 더 짧게 줄여볼까 생각한다. 문장도 좀 고치고, 그러면 좀 볼만해지지 않을까?
그래, 네 말이 맞아. 가끔 아무 이유없이 어떤 하나의 단어가, 우리를 사로잡을 때가 있는 거다. 겨울창문처럼. 겨울창문, 그러한 감정이란 소중한 거지. 왜냐면 감정이란 한낮의 햇빛에 사라지는 겨울창문의 성에처럼 언제든 사라지기 마련이거든. '난 그녀를 잊지 못할 것이다. 기억이 통조림에 들었다면 기한이 영영 지나지 않길. 만일 기한을 적어야 한다면 만년 후로 적어야지.' - 중경삼림
1. '사라졌다.'· '잃었다.'· '떠났다.''사라졌다.'는 진술은 '잃었다.' 또는 '떠났다.'라는 진술과 다르다. 그 다름은, 상당히 직관적이지만, 곰곰 따져보면 어떠한 대상이 '없어졌다.'는 결과는 똑같다. 그러니까, 나는 지갑을 잃어버렸다. 지갑은 사라졌다. 어쩌면 지갑이 나를 떠났다. 이것이나 저것이나 나라는 존재, 또는 나라는 존재를 포함하고 상황에서 지갑은 '없어진' 것이 된다. 그렇다면, 위의 세가지 진술은 어떻게 다른 걸까? 내 설명은 이렇다. 일단 '떠났다.'는 그 대상이 자신의 의지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지갑이 '떠났다'라고 표현하는 건, 단순한 의인화에 불과하다. 그리고 '잃었다.'는 대상을 향한 주체와의 관계, 어떤 면에서는 '소유'의 관계가 문제가 된다. 즉, '잃었다.'는 ..
얼큰하게 취해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한무리의 사람들이 모여 떠들고 있다. '2차 안가요?' 여자의 목소리다. 2차? 2차는 좋다. 누구라도, 2차는 좋다. 나는 동화가 좋다. 여러가지 일들이 있었다.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있었다. 그러나, 결국에는 모두가 행복했다. 이런 얘기가 좋다. 물론, 좋아한다는 것과, 실제로 그렇게 산다는 것은 다른 얘기겠지만.
사랑이란, (물론 이렇게 시작하는 모든 문장들에 대해 내가 가지는 거북함이란 일반적인 것이겠지만) 나에게 하나의 풍경이다.
요즘의 나는 분명, '이런 얘기를 쓰고 싶다'라고 생각하기 보다, '이런 얘기를 쓸 수 있을까'라고 생각한다. 삶이란 살면 살수록 더 어려운 법이다. 아니지. 이런 얘기가 아니다. 과연 '쓸 수 있을까'라고 묻는 것이 내가 소설을 쓰면 쓸수록 드는 생각인 건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가령 이제 이만큼 써봤으니 쓰면 잘 써야지 라고 생각하는 게 아닐까? 내 자신의 소설에 대한 어쭙잖은 기대치가 생긴 건 아닐까? 그렇다면, 나는 '잘 쓴 소설'이 뭔지나 알고 있나?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이, 이것은 굉장히 미묘한 문제다. 나는 분명히 이렇게 말했다. 잘 쓴 소설을 만들려고 하지말고, 네가 말하고 싶은 것을 잘 말하라고. 그것이 소설이 되느냐 안 되느냐는 차후의 문제라고. 하지만 말하고 싶은 것을 잘 말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