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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재
지난 두 번의 소설 세미나에서 나를 곤혹스럽게 만든 건, '진부함'이란 단어였다. 사람들은, 곧잘 당당하게 말한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라든지 이미 모든 것은 다 발병되었고, 모든 이야기의 패턴과 주제와 기법들은 실험되었다, 라고. 정말일까? 3학년 1학기 '물리학' 교양강좌에서 교수님은 첫 시간, 우주는 무한한가, 아님 유한한가 라는 질문을 학생들에게 던졌다. 간단하다. 마치 오엑스 문제처럼. 정답은 우주는 무한하다, 였다. 아, 그렇군. 우주는 무한해. 수업이 끝나고 밥이라도 먹으러 가면 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문제는 우주가 유한하지 않고 무한하다는 사실이 아니라, '어떻게' 무한한가라는 점이다. 난 아직도 잘 이해할 수 없으므로, 잘 설명할 수가 없다. 뫼비우스의 띠나, 클라인씨의 ..
알았다. 분명, 백미터 달리기 선수가 시합에 임하기 전 근육을 풀기 위해 스트레칭을 하고, 몸을 따뜻하게 하기 위해 워밍업을 하는 것처럼, 문장을 쓰는 행위, 특별히 소설을 쓰는 경우에도 그러한 사전 작업이 필요한 것이다. 그건, 차라리 배우가 슬픈 장면을 찍기 전에, 그리고 눈물을 안약 없이 흘리기 위해 슛이 들어가기 전부터 슬픈 기억을 떠올리는 것에 가깝다. 중요한 건, 리듬을 타는 것이다. 몰입해야 하고, 한 순간의 방심도 허용해선 안 된다. 가령, 목이 말라서 냉장고 문을 열었더니 갑자기 배가 고파져서 뭔가를 주섬주섬 챙겨먹는 행위는 최대로 경계해야 할 일이다. 배부른 정신은 소설을 쓸 수 없다. 소설의 일종의 결핍으로 비롯되는 양식이다. 전화도 안 된다. 세계와의 단절이 필요하다. 정신적 공복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