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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재

다시 `우는 여자 모티브` 본문

단상

다시 `우는 여자 모티브`

물고기군 2000. 7. 19. 00:25
언젠가 '우는 여자 모티브'라는 글을 올린 적이 있다. 사실 '운다'는 행위와 '여자'를, 그렇게 함부로 연결시키는 것은 위험하다. 그러나 '우는 여자'와 '우는 사람'이라는 두 개의 문장은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진다. 설혹, 그 '우는 사람'이 '여자'라 할지라도 굳이 '우는 여자'라고 말하는 방식은 또 다른 의미를 생산한다. 나는 그것에 대해 가끔 생각한다. '우는 여자'가 '우는 사람'과 다르게 생산하는 의미는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우는 여자'는 정말로 하나의 모티브가 될 수 있을까? (될 수 있을 것 같다. 왜냐하면, '우는 사람'은 아무리 생각해도 모티브가 될 수 없으므로.)

그것과 다르게, '운다' 더 구체적으로 '눈물을 흘린다'는 행위는, 문득 생각난 건데, 참 신비롭다. 경험적으로 내가 눈물을 흘리는 경우는, 소설이나 영화 같은 간접 경험을 배제한다면, 언제나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였다. 언젠가 누군가에게 '너는 어때?'라고 물은 적이 있는데, 자신도 그렇다는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아, 그렇군. 우리 모두는 '억울해서' 우는 거야.

그러나, 그렇지 않을지도 모른다. 아, 정말 궁금하다. 어떤 경우에 사람들은 눈물을 흘리는 걸까? 슬프다는 감정은 어떠한 상태를 말하는 것일까?

그러나, 기필코 그러나, 내가 궁금한 것은 그것뿐만이 아니다. '눈물을 흘리는 당사자'의 문제만이 아니다. 내가 궁금한 것은, '눈물을 흘리는 여자', 그렇다, '우는 여자'가 나에게 일으키는 감정이다. 그러한 경험, 그러한 시간, 그러한 상황이 나를 데리고 어디로 가는가 이다. 그래서 무엇을 가르쳐 주는가 이다. 단정적으로 말한다면, 그들은 내게 '살아가는 일'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생의 비밀을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닐까?

그저 조용히 눈물을 흘릴 것. 그것을 여성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것을 '삶'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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