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재
위엄 본문
위와 같은 생각의 연장선상에서, 나는 가끔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 단어들을 몇 개고 떠올려본다. 그러니까, 내가 이름을 붙이지 않은 단어들이다. 가령, 위엄. 명예, 공동체. 어디 이뿐이겠나? 수도 없이 많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나는 '위엄'이라는 단어를 아주 낯설게 바라본다. 심지어 이 단어가 무슨 뜻일까, 싶다.
그러니까, 나는 위엄을 가질 수 없다. 대체 무슨 뜻인지도 모르는 단어에, 내 존재를 붙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다르게 말하면, 나는 이런 단어는 잘 알고 있다. 유치함, 경박함, 치졸함, 이기적인, 소심함. 아주 친숙한 단어들이다. 그리고, 그 뜻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내가 '위엄'이라는 단어에 안달하는 것은 아니다. 나이가 들면, 그런 걸 가질 수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다분히 어린애 같은 말투지만, 나는 그런 게 없어도 잘 살아갈 수 있다. 그렇다. 그게 내 방식이다. 나는 꼼짝도 하지 않을 것이다. 여전히 유치하고 치졸하게 살아나갈 것이다. 소심하고 이기적으로 살아나갈 것이다.
만일, 또 어떤 행운이 찾아와 우리의 죽음 뒤에 또 다른 생이 있다면, 그래서 그곳에 가면 제일 먼저, 이곳의 생에서 우리가 만든 그 한 권의 단어장을 검사 받는다면, 나는 이런 말을 듣게 될까? '당신은 어째서 위엄이라는 단어를 기입하지 않았습니까? 그것은 정말로 중요한 단어입니다. 당신은 왜 당신의 생에서 위엄을 지키지 않았습니까?'
그럼, 나는 뭐라고 변명할 것인가? 아니, 변명하지 않겠다. 그 때만은 '위엄'을 지켜야지. 내가 살아온 생에 대해서, 누군가에게 변명하는 것은, '위엄'있는 행동이 아닌 것이다.
ps : 어째서, '위엄'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된 걸까? 누군가는 내게 그 이유를 가르쳐 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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