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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재
당신이 진실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말을 더듬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누구라도 당신에게 능숙하게 말하는 법을 가르칠 수 있고, 사람들 앞에서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자신감을 심어줄 수 있지만, 누구도 당신이 진정으로 말하고 싶고, 말해야만 하는 것을 가르쳐줄 수는 없다. 자신이 잘 쓸 수 있는가를 의심하지 말고, 뭘 쓸 수 있는가를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뭘 쓰고 싶고, 뭘 써야만 하는지 먼저 깨달아야 한다. - ‘믿거나 말거나 물고기 글짓기 교실’
문장을 쓴다는 게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비로소 문장을 쓸 수 있다는 말에 대해서, 예전에 저는 과연 그럴 수도 있겠구나 정도로밖에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문장에 대한 그러한 태도가, 어쩌면 지금까지와는 다른 느낌을 줄 수도 있겠구나 싶었던 겁니다. 마치 산다는 게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더 잘 살 수 있다는 식처럼 말이죠. 그러나 물론, 선뜻 그러한 입장을 취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그것이 삶이든 문장이든, 때로는 자신의 모든 것을 내걸어야만, 획득할 수 있는 '무언가'를 포함하고 있는 것처럼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 나는 그 말을 조금 더 많이 이해할 수 있게 된 듯한 느낌이 듭니다. 과연 저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만, 문장을 쓴다는 ..
기뻐하십시오. 이 날이 오고야 말았습니다. 방금 전 체중계에 올라가서, 저는 보았습니다. 드디어 60킬로 대에 접어들었습니다. 69.6, 정확히 말해서 69.6 킬로였습니다. 부끄러운 과거 얘기였지만 - 하긴 굳이 부끄러울 것도 없죠 - 제가 대학교 1학년 군대신검을 받을 때 정확히 80킬로였습니다. 그러나 정작 군에 입대할 때는 그보다 더 살이 쪘기 때문에 분명 더 나갔을 겁니다. 제대할 쯤에는 물론 살이 빠졌더랬습니다. 그래도 제 인생에 지금껏 60킬로 대였던 적은, 제 키가 지금보다 더 작았을 적 밖에 없다고 장담합니다. 거울에 비쳐보니 어렴풋하나마 배에 왕(王)자의 형태가 보입니다. 마치 폭정에 시달려온 민초들처럼, 오랫동안 살 속에 묻혀 있었던 제 배의 근육이 길고 어두웠던 인고의 세월을 이겨내..
새소설을 올렸습니다. 작품을 쓰기 시작하고 작품이 완성된 건, 그저께 아침이었습니다. 새벽 다섯 시에 역시 잠이 오지 않아, 엎드려서 끼적대다가, 문득 벌떡 일어나 그대로 써나가기 시작해서 아침 열한 시에 끝을 냈습니다. 한 여섯 시간 걸렸군요. 거의 수정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번 소설은 구상을 꽤 오래전부터 해두었던 거라, 소설을 시작하면서 부담감을 안고 있었습니다. 역시나 쓰는 과정에서, 구상한 대로 끌고 가야 한다는 압박감이, 또 구상한 것이 있으니까 하는 안일함이, 집중력을 떨어뜨린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듭니다. 쓰고 나서, 두 가지를 저 자신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솔직하게, 충분히 말했는가?’ ‘멋을 부리려고 하지 않았는가?(누군가를 흉내 내려 하지 않았는가?)’ 어느 쪽에도 확신은 없습니다...
며칠 전부터 손톱을 깎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손톱을 깎아야겠다는 생각은, 분명히 손톱을 깎고 나면 더 이상 하지 않겠지요. 그렇습니다. 저는 아직 손톱을 깎지 않았습니다. 지금 이렇게 컴퓨터의 자판을 치면서, 그 긴 손톱이 자꾸 신경을 거스릅니다. 정말 손톱을 깎아야겠습니다. 열심히 살아야겠습니다.
인생은 사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 살아 있었음을 얘기해야 한다. - 사무엘 베케트
타인을 비난하는 것은 참 쉬운 일이지만, 또 그만큼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비난의 쉬움은, 그 비난의 감정이 마음의 얕은 곳에 있기 때문에 별 다른 노력 없이 쉽게 끄집어 올릴 수 있다는 데에 있고, 어려움은 그 비난이 아무런 가치가 없다는 데에 있습니다. 그러니까 누군가를 비난하고자 할 때, 거기에 노력을 기울여 힘을 쏟으려 할 때마다, 과연 그것이 그만한 가치가 있는가, 그렇게 해서 비난하는 자신이나, 그 비난의 상대에게 무슨 도움이 될 것인가를 생각해본다면, 거기에는 온전한 소모 밖에 없다는 깨달음을 누구라도 얻을 수 있습니다. 비난은 아무것도 생산할 수 없습니다. 마음의 얕은 곳에 있는 감정을 취하는 사람은, 결국 그 마음이 얕아지고, 깊은 곳으로 들어갈 수 없게 됩니다. ‘물고..
차로 여자를 데려다 줄 때마다, 여자의 집 근처에서 항상 걸리던 신호등이 있었다. 아니, 항상은 아니다. 간혹 가다 그 신호에 걸리지 않고 통과할 때마다 즐거워했던 기억도 있다. 그 신호는 큰길에서 우회전으로 꺾어진 뒤 짧은 터널을 통과해, 우리가 달리던 큰길과 나란히 놓여 있는 또 다른 큰길과 만나는 사거리 신호등이었다. 터널이 지면보다 낮게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차가 신호에 걸려 정지한 지점은 경사의 꼭대기였다. 차는 금방이라도 뒤로 미끄러질 것처럼 위태롭다. 신호는 길었다. 나는 핸드브레이크를 힘껏 잡아당겨 걸고, 클러치에서 발을 떼고, 여자 쪽을 바라본다. ‘다 왔어.’ 라고 말한다. 그때 여자가 나를 보며 지었던 표정을 기억하고 있다. 참 많은 것들을 잊어버렸지만, 나는 아직 많은 것들을 기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