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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재
“내가 지금까지 어떤 식으로 생각하고 있었는지 알겠니, 버디야?”그녀는 무엇인가를 발견했다는 말투가 되어 내게 말한다. 그녀는 빙그레 웃고 있었지만 그것은 내 얼굴을 보고 미소짓는 것은 아니었다. 내 등의 훨씬 뒤쪽 한 점을 응시하고 있는 것이었다. “난 지금까지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거든. 하느님의 모습을 보기 위해서는 우리가 먼저 앓아 누웠다가 죽어야만 한다고 말이야. 또 하느님을 뵈올 때는 틀림없이 침례교회당의 유리창을 보는 것 같으려니 상상하고 있었거든. 햇빛이 비추어 드는 고운 착색유리처럼 말이야. 아주 밝아서 해가 지기 시작해도 전혀 깨닫지 못하는 거야. 그렇게 생각하면 마음이 놓이는 거였어. 그 빛을 보고 있노라면 무서운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지. 하지만 그것은 진정 잘못이었던 거야...
인생은 사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 살아 있었음을 얘기해야 한다. - 사무엘 베케트
황금이 모두 반짝이는 것이 아니듯 방랑하는 자가 모두 길을 잃은 건 아니라네. - J.R.P. 톨킨 "반지의 제왕"
일요일에 절에 다녀왔다. 집에서 거의 두 시간 거리에 있기 때문에 아침 6시 반쯤에 집을 나서야만 했다. 이른 시간이었는데도, 밖은 이미 환했다. 날마다 날마다 아침이 오는 시간(혹은 밤이 오는 시간)이 달라지고 있다는 것이 매우 신기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것 자체가 이미 나에게는 매우 신성한 '어떤 것'이었다. 시간의 축을 누군가가 '이쪽'에서 '저쪽'으로 조금씩 조금씩 옮겨 놓는 것.처음, 그 절을 가려고 집을 나섰던 것은 2년전, 그러니까, 스무살, 겨울이었다. 겨울이었으므로, 여섯시 쯤이라도 밖은 아직 어두웠다. 엄마가 나를 절에 보냈던 이유는, 내가 불심이 강하기 때문에 일요일마다 부처님 곁에서 봉사를 해야한다는, 좀 독특하고 어이없는 것이었다. (물론 무보수는 아니었다.)불심이 강했든 어쨌든,..
상당한 확신을 갖고 생각하지만, 세상에서 무엇이 가장 사람을 깊이 다치게 할까. 그것은 잘못된 칭찬을 받는 것이리라. 그런 칭찬을 받아 잘못되어 간 사람들을 많이 보아왔다. 인간이란 타인에게 칭찬을 받으면, 거기에 맞추려고 무리를 하는 법, 그래서 본래의 자신을 잃어버린 케이스가 적지 않다. - 무라카미 하루키
인생이라는 건 우스운 것, 어떤 부질없는 목적을 위해 무자비한 논리를 불가사의하게 배열해 놓은 게 인생이라구. 우리가 인생에서 희망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은 우리 자아에 대한 약간의 앎이지. 그런데 그 앎은 너무 늦게 찾아와서 결국은 지울 수 없는 회한이나 거두어들이게 되는 거야. 나는 죽음을 상대로 싸움을 해왔어. 그건 우리가 생각할 수 잇는 다툼 중에서도 가장 맥빠진 다툼이지. 그 다툼은 어떤 막연한 회색 공간에서 일어나는데, 발 밑에 딛고 설 땅이 없고, 주변에 아무것도 없으며, 구경꾼도 없고, 소란도 없고, 영광도 없고, 승리를 향한 커다란 욕구도 없고, 패배에 대한 커다란 두려움도 없고, 미지근한 회의로 가득한 그 진저리나는 분위기 속에서, 우리 자신의 정당함에 대한 많은 믿음도 없이, 또 우리 ..
삶이 비참하면 비참할수록 진리에 더 가까이 갈 수 있고, 엄연한 실존의 핵심에 더 바싹 다가갈 수 있는 법이다. - 폴오스터 "동행" -
무라카미 하루키, '레이몬드 카버 작품해설', "숏컷", 집사재 쓰여진 말 자체는 단순하다. 원래가 의식적으로 단순한 말을 사용해 글을 쓰는 사람이었지만, 죽음이 가까워짐에 따라 그 경향은 더욱더 강해졌다. 그리고 말 그 자체가 단순해지면, 단순해질수록, 단순한 말의 편성과 구조는 점점 더 연마되고 정교해진다. 간단한 말들을 짜맞춤으로써 심오한 이야기가 가능해진다(거꾸로 된 작품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가). 그것이 말년의 카버가 도달한 경지이다. - 레이몬드 카버의 작품 해설(하루키)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