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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재
레이몬든 카버, [부탁이니 제발 조용히해줘], 안종설 옮김 (집사재, 1996) - 에세이 : '글쓰기에 대하여' 발췌 어떤 작가들은 엄청난 재능을 가지고 있다. 내가 알고 있는 작가들 중에서 전혀 재능이 없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그러나 사물을 바라보는 정확하고 참신한 시선, 또한 그러한 시선을 표현하기 위해 적절하게 맥을 짚어내는 것 등은 재능과는 별개의 문제이다. (...) 위대한 작가, 심지어는 아주 좋은 작가들도 모두 자신의 고유한 시각으로 바라본 세상을 창출해낸다. 이것은 스타일하고도 밀접한 연관이 있지만, 스타일 하나만을 가지고는 충분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작가가 쓰는 모든 것에 대한 구체적이고 명백한 서명이다. 그것은 오직 그 자신의 세계일 뿐이다. 이것이야말로 작가와 그렇지 않은 사람을..
왕 : 나의 성안에서 나, 선량한 왕은 웃을 수 없는 왕녀의 소문을 들었다. 나 역시 진지한 남자로서 웃음을 경멸하노라. 그래서 나는 그 왕녀를 나의 아내로 삼고자 하노라. 내가 모르는 것은 그 왕녀가 사는 곳. 내게 그것을 말해주면, 큰 상금을 받으리라! 뜨내기 : 저는 왕녀께 폐하의 성을 일러 드릴 수 있습니다. 마침 왕녀를 찾아가는 길이니까요. 그렇지만 진심으로 미리 말씀 올리오니, 희망을 갖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제가 가면 왕녀께서 웃으실 테니까요! 왕 : 그대는 헛걸음을 하는 걸세. 들어 보라, 방랑자여. 웃지 않는 것은 왕녀의 뜻이라네! 그것도 마땅한 이유를 갖고. 모든 것이 한번은 죽는 존재라는 것을 생각하는 자는 결국은 쓰디쓴 결론에 이르기 마련일세. 세상은 둥근 것, 반짝거리는 하되 비..
[그래 죽을 수밖에 없는 거다.] 다른 사람들보다도 먼저 죽을 것은 사실이겠지만, 그러나 인생이 살 만한 가치가 없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결국 서른 살에 죽든지 예순 살에 죽든지, 별로 다름이 없다는 것을, 나도 모르는 바 아니었다. 그 어떤 경우에든지, 그 뒤엔 다른 남자들, 다른 여자들이 살아 갈 것은 마찬가지요, 그리고 여러 천년 동안 그럴 것이다. 요컨대 그것은 지극히 명백한 일이었다. 지금이건 이십년 후이건 나는 죽을 것임엔 다름이 없었다. 그 때 그러한 나의 이론에 있어서 좀 거북스러운 것은, 앞으로 올 이십년의 생활을 생각할때, 나의 마음속에 느껴지는 무서운 용솟음이었다. 그러나 이십년 후에 어차피 그러한 지경에 이르렀을 적에, 내가 가지게 될 생각을 상상함으로써 그것도 눌러버리면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