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2008/04 (3)
시간의재
그 배들이 세계의 끝으로부터 온 것은 너의 아주 작은 소원까지도 들어주기 위한 것. -보들레르 '여행에의 초대' 중에서
잠이 오지 않는 밤에 여러 가지 일을 생각하다보면 반드시 이르게 되는 생각의 끝이 있다. 그건 지금껏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가’ 이다. 아니, 무엇을 잘못했다기보다는 ‘어떻게’ 잘못했는가, 그 일이 어째서 그런 잘못된 결과가 되었는가, 그 이유가 무엇인가. 그리고 대개 그 답을 찾아내는데, 이러저러한 방향으로 검토한 결과 내가 찾아낸 답은 꽤 그럴듯하게 느껴진다. 아마도 나는 내가 한 잘못들을 알게 된 것 같다. 다만 여전히 알 수 없는 것은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그 일을 잘할 수 있는가 이다.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가 없다. 백 가지 잘못된 방법을 알게 된다고 해서, 한 가지 잘하는 방법을 알 수 있게 되는 건 아니다. 어떤 일을 잘못하는 방법은 무한정으로 많을 수 있다.
도서관을 나와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렸다. 보도 옆 축대 위에는 벌써 개나리가 피어있었고 물에 젖은 흙냄새가 희미하게 풍겨왔다. 코로 숨을 깊이 들이마시자 그리운 냄새가 났다. 버스가 오는 방향에서 여고생 하나가 내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아래 위 똑같은 진청색의 교복은 도저히 꾸미려야 꾸밀 수 없는 패션이었지만 몸의 균형이나 자세가 좋은 탓인지 제법 눈길이 갔다. 얼굴형은 다분히 남성적으로 각이 져 보였고 미인이라 할 만하지는 않았지만 피부가 유난히 하얗고 눈이 깊어 보였다. 단지 고개를 약간 숙인 채 시선을 아래쪽으로 두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르지만. 그녀 뒤쪽으로 똑같은 교복을 입은 여고생 네 명이 따라오고 있었다. 그들은 일렬로 서서 보도의 전체를 차지했다. 먼저 그녀가 나를 지나쳤고 얼마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