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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재
해질 무렵에 서울 역에 갔었습니다. 열차를 타러 간 건 아니었고, 다른 일 때문이었죠. 기억을 더듬어보면 제가 서울 역에서 열차를 타거나 내린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습니다. 여행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대개는 집에서 가까운 고속버스를 이용하거나 MT 때마다 청량리 역을 이용했었죠. 아니면 단지 기억하지 못할 뿐인지도 모릅니다. 다만 군에 입대하던 날 논산행 열차를 탔던 기억만은 선명합니다. 어머니가 저를 서울 역까지 데려다 주었고, 그 다음부터 논산까지는 친구들이 함께 해주었죠. 무궁화 열차를 탔었는데, 좌석 시트가 부드러운 촉감의 붉은 색 우단이었습니다. 다시 찾은 서울 역은 제게 전혀 새롭게 보였습니다. 물론 실제로 달라진 것이죠. 고속철도 개통에 맞춰 현대식의 새 역사가 들어..
인간이란 자신이 그것을 하지 않아도 된다면 하지 않고, 또한 그것을 할 수 있다면 원하지 않아도 행하는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 이를테면 선한 행위(친절)란 악한 행위의 비가능성(금지)에 이끌리고, 악한 행위(불친절)란 악한 행위의 가능성(허용)에 이끌리는 식이다. 그러나 이 조합은 가능한 모든 경우를 포함하지 않는 지도 모른다. 이것은 인간 행위의 뿌리라 여겨지는 욕망에 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데, 욕망이란 비가능성(금지)이나 가능성(허용)을 통해서 촉발되고, 전혀 자발적인 것이 아니라는 견해를 표방한다. 그러므로 가능성(비가능성)에 지배받는 인간에게 순수한 욕망과 선한 의도, 그리고 그것이 이끈다고 믿는 숭고한 행위 같은 것은 처음부터 있지도 않은 일인지도 모르지. - 방명록에서
일요일, 한 시간 한 시간 해야 할 일을 미루면서 계속 티브이 채널만을 돌리다가 ‘연인’이라는 노래의 뮤직비디오를 보게 되었습니다. 토이의 객원가수로 이름을 알린 김연우의 독집 앨범에 수록된 곡으로 모르긴 몰라도 이 역시 유희열의 곡이라 짐작됩니다. 뮤직비디오는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실제 여러 쌍의 연인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건 마치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와 비슷합니다. 영화를 본 분이라면 쉽게 연상하실 거라 믿습니다만, 한 쌍 한 쌍 차례로 인터뷰가 진행됩니다. 여자가 말을 하거나 남자가 말을 합니다. 그 동안 둘은 꼭 붙어 앉아서 손을 잡고 있거나 어깨를 감싸 안고 있거나 말하는 상대방의 얼굴을 정말 사랑스럽다는 얼굴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가만히 상대방의 말을 듣기만 하는 커플도 있고, 맞장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