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2000/03/12 (2)
시간의재
난 자주 나에게 어떤 시간들이 사라졌음을 느낀다. 모든 시간들은 사라지는 법. 하지만 내가 말하는 건, '어떤' 시간이다. 여자를 집까지 바래다주고, 차를 몰고 새벽의 거리를 달린다. 여자의 집에서 우리 집까지, 약 이십 분 정도 걸렸다. 난, 차를 파킹시키고, 시동을 끈다. 시간은 일정해서, 언제나 열 두시 이십 분에서, 사십 분 사이 정도. 난 혼자 차를 몰고 오는 내내 듣던 라디오 프로그램을 조금 더 듣는다. 이전에는 없던 버릇이다. 난, 라디오를 즐겨듣는 사람이 아니었다. 라디오의 프로그램은 다양했다. 사연을 읽어주기도 하고, 직접 청취자와 전화통화를 하기도 한다. 패널이 나와서, 진행자와 시시껄렁한 잡담을 나누기도 한다. 집으로 가는 전철을 타고 오면서, 그녀 생각이 났다. 갑자기, 그 라디오 ..
이틀 간, 죽어 있었습니다. 시체놀이를 했습니다. 아, 한 편의 소설을 끝내고 나니, 또 내 자신을 놓아주고 싶었던가 봅니다. 그 날 밤 무슨 일이 있었던가요? 누군가 잘 모르는 사람도 왔다 가고, 재혁 군의 얼굴도 본 기억이 나는군요. 노래방에 가서 맥주를 마셨던가? 다시, 책상 앞에 앉았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세상이 두려워지는 이유를, 아직도 모르고 있습니다. 다만, 한없는 기대와, 꼭 그만한 실망의 낙차를 이해할 뿐입니다. 난 생을 기대하지 않는데, 자꾸 생은 나를 기대하는군요. 내가 나를 기대하는군요. 새벽입니다. 내 소설 속으로, 그 비린내가 나는 새벽의 거리로 들어가려고 합니다. 잘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언제나 내가 소설 속에 머무는 시간이 좋습니다. 내가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 그렇게 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