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재
톰 행크스 주연의 '캐스트 어웨이'라는 영화를 보면 아주 근사한 대사가 나옵니다. 그 대사를 이해하기 위해선, 개략적인 영화의 내용을 알아야 하는데, 뜻밖의 비행기 사고로 무인도 생활을 시작하게 된 주인공 척은 약 4년의 시간이 지난 어느 날 해변가로 밀려온 알루미늄 합판(무슨 간이 탈의실 문짝 같습니다.)을 뗏목의 돛으로 삼아 그곳을 탈출해 사회로 복귀하게 됩니다. 그러나 무인도에서의 고독한 삶의 위안이 되어주었던, 두 가지, 배구공 윌슨은 바다에서 잃어버리고, 또 여자친구 켈리는 자신이 이미 죽은 줄 알고 다른 남자와 결혼을 한 상태였습니다. 그는 많은 것들이 달라졌고, 또 많은 것들을 잃어버렸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캘리를 만나고 돌아온 날 밤, 그는 친구에게 이렇게 얘기합니다. '이제 나한테 남..
애완동물은 'pet'이야, 이 바보야. 이런 얘기를 들었습니다. 아, 쪽팔려라. 헤헤.
이야, 안녕하십니까? 날씨가 따뜻해졌다 추워졌다 반복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따뜻한 날씨가 점점 그리워지는 요즘입니다. 겨울은 아주 지겹습니다. 지금은 오전 열한시입니다. 최근에는 일찍 일어나는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봤자, 오전 아홉시정도이지만, 아침에 일어나서 밥도 먹고, 티브이도 보고 그럽니다. 햇님이 동쪽에서 떠오르는 것도 봅니다. 이야, 햇님이 정말 동쪽에서 떠오르더란 말입니다. 아니, 사실을 얘기하면, 해가 떠오르길래 그쪽이 동쪽인줄 알았습니다. 마루에선 시끄러운 진공청소기 소리가 들립니다. 청소를 하고 있는 겁니다. 일주일 동안 묵은 먼지를, 강력한 진공청소기로 흡입하고 있습니다. 근데 그 소리가 엄청 큽니다. 그래도, 그렇게 큰소리가 들리니 흡입력이 대단할 거란 생각이 들어서, 아주 ..
내게 있어, '생(生)'이라는 말은, 그와 뜻이 비슷한 '삶', '인생' 등과는 다른 것처럼 느껴진다. '삶'은 현재적이고 지속적인 뉘앙스를 담고 있고, '인생'은 개체적인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뉘앙스를 담고 있다. 말 그대로 '인간 개체 전체의 삶'이라는 추상성을 담고 있다. 대신 '생'은 단위적이고 완결적이다. 개체적이면서 구체적이다. 거기에는 한 인간의 탄생과, 죽음까지의 전과정이 담겨있다. 이런 식으로 '생'이라는 단어를 정의내리고 나면, 분명 '생'이라는 말은 이미 죽은 사람들에게만 쓸 수밖에 없는 지도 모른다. 장례식장의 조사에서나 쓰일 법한 말이다. 그러나 꼭 그렇지도 않다. 가령 '나의 생(生)'이라고 말한다면, 지금껏 내가 살아온 삶과, 또 앞으로 내가 살아갈 삶 전체를 지칭할 수 있다...
내 속에 무언가 자라고 있어. 나는 그걸 느껴. 무서워 죽겠어. 일을 전부 망쳐버릴지도 몰라. 그런데, 그 모든 일이 끝난 뒤에도, 나는 여전히 나일까?
황금이 모두 반짝이는 것이 아니듯 방랑하는 자가 모두 길을 잃은 건 아니라네. - J.R.P. 톨킨 "반지의 제왕"
1. 성장소설 이 작품이 꼭 성장소설이라는 건 아니지만, 나는 성장소설을 좋아한다. '호밀밭의 파수꾼'이라든지, '데미안', '파리대왕', '죄와 벌'같은 식의 소설을 좋아한다. 성장소설은 항상 두 개의 세계를 보여준다. 하나의 세계에서, 또 하나의 세계로의 이동 또는 진입을, 우리는 아마 '성장'이라고 부르는 것이리라. 그 두 개의 세계를 각각 무엇이라 부르는지는 정해져 있지 않다. 그리고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 어느 편이 더 올바른 형태의 세계인지도 중요하지 않다. 물론 대개는 전자, 즉 성장 이전의 세계에 대해 호의를 가지고 있다. 편의상 그것을 '아이의 세계', 그리고 다른 하나를 '어른의 세계'라 부를 수 있다 (이 작품에서는, 전자를 소설 속의 표현을 따서 '보드랍고 따뜻한 세계'라 이름 ..
예전부터 줄곧 생각해왔던 건데, 살아가면서 결코 가까이 해서는 안 되는 사람들 중의 하나는, '상대방이 말하지 못하게 하는 사람'입니다. 상대방이 말하지 못하게 하는 사람, 이란 어떤 사람인가? 이것은 단순히 상대방이 무슨 말을 하려고 할 때마다, 그 말을 가로막거나, 또는 상대방이 말할 틈도 주지 않고 자기 혼자 떠드는 사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사람들은 결코, 그렇게 직접적으로 겉으로 드러나지 않습니다. 언뜻 보면 그들은 굉장히 관용적이고 너그러운 사람처럼 보입니다. 상대방의 얘기를 주의 깊게 듣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들의 아주 사소한 말투와 눈빛, 그리고 태도가 상대방으로 하여금 말을 하지 못하게 합니다. 상대방으로 하여금, '내 의견 따위는 정말 하잘 것 없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