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재
그 남자 본문
그 남자는 자신이 더 이상 이 모든 상황을 감당할 수 없으리라고 생각했다. 이 말의 의미는 이전까지 자신이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리라.
십 여년 전 결혼했을 때, 그는 자기 인생이 새로 시작되는 기분을 느꼈다. 진지하게, 그리고 지속적으로 생각한 것은 아니지만, 그는 결혼을 통해서 인생 - 특히, 그 자신의 인생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졌고,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니, 생각했다기 보다는, 어디선가 그런 생각이 그에게 찾아왔고, 그는 마지못해 그 생각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니까 그가 결혼을 결심했을 때는 그게 뭔지도 몰랐고, 그게 자기 인생에 무슨 영향을 미칠지도 몰랐다. 그것은 자기 인생에서 일어나는 다른 여러 사건 - 진학이나 입대 같은 일 중에 하나였을 뿐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 그는 ‘감당’이란 단어가 자꾸 떠올랐고, 그 단어를 포함한 전체 문장이 겨냥하는 것이, 바로 ‘자기 인생’이라는 사실을 인정했다. 즉, 너는 네 인생을 감당해야 해. 또 이 말의 의미는 이전까지 그는 인생을 그런 식으로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이리라. 그에게 인생은 감당해야 할 것이 아니라, 그냥 흘러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결혼과 함께, 그 흐름은 뚝 끊겼다. 그는 마치 정신을 차려보니 발목까지 차오르는 얕은 개울에 우두커니 서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전까지 자신을 싣고 흐르던 부드럽고 따뜻한 물살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어느 날 밤, 그는 꿈속에서 무언가 무너지는 소리를 들었다. 다음날 아침, 주방 싱크대 아래 걸레받이 판자가 떼어져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그것이 현실의 소리라는 것을 알았다. 결혼식을 올리기 전, 그 혼자 신혼집에서 지내던 약 보름 동안 중에 일어난 일이었다. 고양이가 한 짓이었다. 총각 시절, 그가 독립해 나오자마자 기르기 시작한 고양이로, 나이는 일곱 살, 따져보면 거의 반 평생을 살아오던 집에서 그와 함께 신혼집으로 이사온 셈이었다. 며칠 동안 밥도 먹지 않고, 구석진 곳에 몸을 꾸겨넣고 꼼짝하지도 않았다. 그러더니 결국에는 이렇게 걸레받이 판자를 떼어내서 마치 쥐새끼처럼 싱크대 아래 안쪽 깊숙한 곳으로 숨어들었다. 그는 쪼그려 앉아 머리를 기울여 안을 들여다 보았지만, 고양이는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안에 있는게 분명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렇게 은신처를 찾은 후로 고양이는 완전히 기운을 회복한 것처럼 보였다. 물론 여전히 바깥에서 들리는 작은 소리에도 깜짝 놀라 귀를 쫑긋 세우고는 후다닥 싱크대 아래로 기어들어 갔지만 나머지 시간에는 밥도 잘 먹고, 집안 구석구석을 활달하게 돌아다녔다. 아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는 싱크대 아래 걸레받이를 그렇게 떼어진 채로 두었다. 비록 몇 년 더 지나서 고양이도 그 장소를 잊어버린 듯, 더 이상 기어들어 가지 않게 된 후에도.
고양이는 3년 전에 죽었다. 그의 막연한 예상대로 고양이는 그렇게 15년을 살았다. 인생의 전반기를 총각인 그와, 나머지 후반기를 결혼한 그와 살았다. 그리고 묘하게도 바톤을 이어받듯이 아이가 태어났다. 거의 하루, 이틀 차이였다. 고양이를 잃은 슬픔을 느낄 겨를도 없었다. 그의 사무실 책상에 아이 사진이 담긴 액자가 세워졌는데, 그것을 보고 황차장은 마치 자신의 일처럼 기뻐하고, 자신의 아이처럼 좋아했다. 황차장은 아이를 키워야만 진짜 인생을 살게 되는 거라고 말했다. 그는 그말의 의미를 얼마 지나지 않아 알게 됐다. 황차장은 회사에서 그에게 아버지같은 존재였다. 왜인지 알 수 없지만 황차장은 그가 신입이었을 때부터 그를 아꼈고, 그가 다른 동기들에 비해 빠르게 승진할 수 있었던 데도 황차장의 몫이 컸다. 회사에서 그는 소위 말하는 황차장 라인이었다. 물론 그에게는 장점이 많았다. 그는 기본적으로 매우 성실한 인간이었고, 머리도 무척 좋았다. 특별히 노력하지 않아도 학창시절부터 그의 성적은 줄곧 탑클래스였고, 집안이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일류고등학교에 일류대학, 졸업 후에 곧바로 일류기업까지, 말그대로 탄탄대로인 인생이었다. 이미 말했듯이 그의 인생은 부드럽고 따스한 물살에 실려 두둥실 떠가는 것 같았다. 그는 그게 뭔지 몰랐지만, 또 딱히 그런 인생에 만족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자신이 운이 좋다는 점은 부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런 그의 운은, 아마 거기까지 였다.
아기에게 문제가 있었다. 심장에도 문제가 있었고, 신장에도 문제가 있었다. 구조적이기도 했고, 화학적이기도 했다. 어쨌든 아이의 몸에는 수많은 관이 연결되었는데, 그 모습이 마치 나무 같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 관들은 가지거나 뿌리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를 더 힘들게 한 건 아내였다. 아내는 내내 고양이가 싫었다고 말했다. 그는 왜 고양이가 살아있을 적에, 자신에게 그 사실을 말하지 않았는지 궁금했다. 그리고 고양이가 이 일과 무슨 상관이 있는지 몰랐다. 어느 날 아내는 아기를 거의 죽일 뻔했다. 아내는 고양이를 봤다. 아내는 정신과 상담을 받아야했고, 약을 먹어야 했다. 약을 먹으면 아내는 아주 온순해졌지만 하루의 대부분을 침대에서 보냈다. 그렇게 아내는 안방 침대에, 아기는 병원 침대에, 마치 나무처럼 누워만 있었다. 한편 회사에는 구조조정이 있었다. 그는 살아남았지만 황차장은 날라갔다. 황차장은 자기 사업을 벌일 계획인데 그에게 합류하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그는 회사에서 황차장의 업무를 이어받았다. 그의 생각에 자기 마저 회사를 떠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그런 생각은 황차장에게는 배신이었다. 황차장을 마지막으로 만난 날은 몹시 안좋았다. 황차장에게는 아이가 둘 있었는데, 현재는 모두 어머니와 함께 미국에 있었다. 매달 보내야 하는 돈이 엄청났다. 그는 황차장에게 회사의 입장을 전해야 하는 역할을 맡았다. 황차장이 횡령한 돈을 조용히 돌려주면 회사는 형사고발은 하지 않을 거라는 게 전달사항이었다. 그는 직급이 올랐고, 봉급도 올랐다. 하지만 그것과 비교도 안될 정도로 업무양도 늘어났다. 인원은 줄어들고, 실적 압박은 점점 심해졌다. 1년이 지난 후에는 모회사에서 그가 속한 회사를 매각할 거라는 소문이 돌았다. 그때까지도 아이는 살아 있었다. 현대의학의 승리였고, 돈의 힘이었다. 의사는 새로운 치료방법을 제안했는데, 비급여 항목이라서 이전보다 서너 배 이상 돈이 필요했다. 그런데도 반드시 좋아진다는 보장도 없었다. 그가 선택해야 했다.
아내는 거의 살아있는 것 같지 않았다. 그녀 옆에 누워 있으면, 결혼 전 자신이 품었던 인생에 대한 이미지가 떠올랐다. 다시금 무언가 그의 몸을 띄워서 두둥실 흘러가게 만드는 것 같았다. 입사 동기의 장례식에서 황차장을 만났다. 1년 전 구조조정에서 해고 된 직원이었다. 아내가 무척 예뻤고, 강인하게 보였다. 황차장님, 돈이 필요합니다. 그것도 많이요. 그가 말했다. 황차장은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했다. 황차장은 괜찮아보였다. 아니, 이전보다 훨씬 나아보였다. 황차장은 여전히 그에게 친절했고, 이렇게 되물었다. 자네, 감당할 수 있겠나? 그는 회사가 매각되기 전에 뜰 생각이었다. 그 즈음 아버지가 쓰러졌다. 두 번의 큰 수술을 받았다. 다행인 것은 아내 상태가 조금 나아졌다는 것이다. 아내는 정신을 차렸고, 그에게 이혼을 요구했다.
어느 날 밤, 그는 다시 무언가 무너지는 소리를 들었고, 이번에는 곧장 잠에서 깨어났다. 혼자 자기에는 지나치게 넓은 침대는 마치 바다처럼 출렁이는 것 같았다. 그는 방문을 열고 나왔고, 온 집안에 불을 켰다. 집 또한 너무 넓었다. 두 사람이 살기에도, 세 사람이 살기에도 그랬다. 하지만 이제 그는 혼자였다. 부엌 싱크대 걸레받이는 여전히 떼어진 채로, 그 아래 편은 어둠에 휩싸여 있었다. 그는 한참동안 쪼그려 앉아, 그것을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그 구멍 속에서 무언가 기어나오길 기다리는 걸까? 3년 전에 죽은 고양이가? 아니면, 가지처럼 관을 줄줄 달고 있는 자기 아이가? 그는 더 이상 자신이 이 모든 상황을 감당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점점 자신이 쪼그라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그러길 바랐다. 처음 이 집에 이사왔을 때 고양이가 그랬던 것처럼, 그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바닥에 몸을 바짝 엎드리고 그 구멍 속으로 기어 들어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