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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재

축복의 방 본문

소설

축복의 방

물고기군 2013. 10. 21. 20:56

어느 날 잠에서 깨었을 때, 그는 방 안이 햇빛으로 가득 차 있음을 깨달았다. 너무 환하고, 너무 밝고, 너무 눈이 부셨다. 잠에서 막 깨어나 사리분별이 원활치 않은 머리로 그는 이게 뭔 일인가 싶었다. 어제와는 다른 어떤 일이 지금 막 벌어진 것 같았다. 그래도 그는 가만히, 정신을 차렸을 때 그대로의 자세로 침대에 계속 누워 있었다. 무슨 일이 벌어졌다면, 이미 벌어진 일이었다. 앞으로 또 무슨 일이 벌어진다 해도, 그 역시 계속 그대로 두면 되는 일이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모든 게 어제와 똑같았다. 달라진 게 있다면, 다만 그가 평소보다 일찍 깨어났다는 것뿐이었다. 

그는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났고, 좀 어이가 없었다. 이 집에 이사온 지 일 년이 넘었는데, 그날로부터 매일 이 방에서 잠이 들고 깨고 했는데, 아침 이 시간 즈음이면 이렇게 햇빛이 잘 든다는 사실을 몰랐다니. 누군가는 말도 안되는 일이라고 했을 것이다. 이를테면 그는 누군가에게 이 얘기를 할 수도 있었다. 그러면 상대방은 왜냐고 물을 것이다. 왜냐니? 그 시간에 한 번도 일어난 적이 없으니까 그렇지. 그러면…… 상대방은 웃음을 터뜨릴까? 하지만 누구에게 이 얘기를 한단 말인가? 그는 계속 침대에 누워 생각했다. 지난 1년, 아니, 2년, 3년. 시간은 미친듯이 빠르게 흘러갔다. 그는 자신이 마치 우주에 있는 것처럼 느꼈다. 바로 그 순간에 든 생각이었다. 창 밖으로, 저 먼 하늘 위에 떠 있는 태양을 바라보고 있자니 든 생각이었다. 태양빛이, 상상할 수도 없으리라만큼 거대한 우주 공간을 날아와, 바로 이 조그만 방 안을 가득 채우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는 또 ‘축북’이라는 말을 생각했다. 또 ‘은혜’라든지, ‘은총’이라는 말들도 떠올랐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어머니의 말,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떠올렸다.

의사 - 사람들은 그를 의사라 불렀지만 그는 병을 치료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 는 침대에 반쯤 몸을 일으켜 앉아 있는 어머니 곁에 서 있었다. 그는 의사가 어머니에게 하는 말을 엿들었다. 그 의사는 그에게, 그리고 그의 아버지에게 환자가 사실을 아느냐고 물었었다. 어떤 사실? 아버지는 아마 모를 거라고 대답했다. 일을 그렇게 진행해서 안된다는 게 그 의사의 지론이었다. 의사는 자신이 직접 어머니에게 말하겠다고 했다. 그 동안 그는 어머니의 멍한 얼굴을 바라보았다. 마치, 잠에서 막 깨어나,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하겠다는 듯한 얼굴이었다. 하지만 그건 그냥 약에 취한 것뿐이었다. 의사는 어머니에게 말했다. 약을 드셨죠? 주사도 맞고. 하지만 그건 병을 치료하는 게 아니에요. 단지 고통을 덜어주는 것뿐입니다. 아시겠어요? 환자분은 죽을 거에요. 이제 준비를 하셔야 해요. 그는 계속 어머니의 얼굴을 바라봤는데, 거기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분명히 의사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 같았다. 놀라움도 당황스러움도, 슬픔이나 고통의 감정도 비치지 않았다. 모든 게 너무 빨랐다. 이렇게 진실을 알려주니까 고맙죠? 의사가 물었다. 곁에서 그 말을 들었을 때 그는 자기 귀를 의심했다. 자신이 죽을 거라고 말하는 의사에게, 어머니가 왜 고마움을 느껴야 한단 말인가? 그것은 농담이었을까? 그는 분노를 느꼈다. 그런데 그 순간, 어머니는 멍한 얼굴로 의사를 한 동안 바라보더니, 마치 어린아이가 된 것처럼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런 어머니의 모습을 바라보는 게 너무나 힘들었다. 온 몸이 무너져 내리는 느낌이었다. 그에 비하면 어머니의 죽음 자체는 조금 더 쉬웠던 것 같다. 

그게 3년 전의 일이었다. 어머니는 그에게 많은 재산을 남겨줬다. 깜짝놀랄 정도의 돈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건물과, 아파트였다. 게다가 보험금도 있었다. 이상한 일이지만, 그렇게 많은 재산을 그녀는 단 1년도 누리지 못했다. 그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버지가 집을 떠난 후, 두 사람은 약 10년 간 함께 살았는데, 그것은 햇볕도 잘 드지 않는, 30년도 전에 지어진 주공 아파트였다. 어째서 그녀는 그것을 누리지 않았을까? 아들을 너무 사랑했기 때문일까?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아니면 당신 자신이 훨씬 더 오래 살거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그는 보험금으로 건물과 아파트에 걸려 있던 은행빚을 갚았고, 기존에 살던 집 - 재건축을 앞두고 값이 상당히 나가는 - 을 팔고 더 작은 집으로 옮기면서 남은 돈도 역시 빚을 갚는데 썼다. 그렇게 되자 순수하게 건물 한 채와, 아파트, 그리고 전세금이 남았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그에게는 매달 약 500만 원 정도의 월세 수입이 생겼다. 그는 전세로 집을 얻었고, 2년 후에 바로 이곳으로 다시 전세로 들어왔다. 그 동안 그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둔 것은 하나도 아쉽지 않았다. 그가 했던 일은, 대리점을 관리하는 거였는데 스트레스가 많았다. 보람도 미래도 없었다. 그래도 뭔가 일을 해야 했지만, 1년 정도는 쉬어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그는 일을 할 필요가 없었다. 그게 잘못이었을까? 시간은 너무나 빠르게 흘렀다. 1년이 2년이 되었고, 다시 3년이 되었다. 돈은 점점 쌓여만 갔다. 생활비는 한 달 100만원이면 충분했다. 더 큰 집으로 옮길 수도 있었고, 차를 살 수도 있었다. 하다 못해, 여자를 만나러 다닐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그날 아침, 그는 우주를 생각했다. 동시에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3년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자신이 고아가 되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인지 기억나지도 않았다. 그는 단 한 푼의 돈도 그에게 주고 싶지 않았고, 그가 어떻게 사는지 궁금하지도 않았다. 언젠가 전화로 아버지는 그를 죽여버리겠다고 했다. 그는 그렇게 하시라고 말했는데, 아직까지 그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정말 그 일이 일어나면, 어쩌면 그를 용서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건 그냥 해보는 생각이었다. 그에게는 이제 아무런 감정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는 거실로 나와 물을 끓여 커피를 탔고,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러고는 한 손에는 컵을 다른 한 손에는 담배를 들고 다시 그 햇빛이 가득한 방안으로 들어갔다. 여전히 방 안은 눈부시도록 노란 빛으로 물들어 있었고, 사람을 마비시키는 것 같은 따스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세상에서 오직 그 방만이 우주의 축북을 받고 있는 것 같았다. 거기에는 아무런 고통도 죽음도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 어떻게 보면 분명히 그것은 어머니가 그에게 남긴 것이었다. 그가 대리점 일을 할 때, 자기와 비슷한 또래의 젊은 대리점주가 있었다. 그는 궁지에 몰려 있었는데, 마지막에 그는 죽어버리겠다고 협박했다. 그 남자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가 보기에도 그 남자에게는 선택지가 없었다. 

그는 태양을 바라봤다. 그리고 계속 우주를 생각했다. 우주와, 자신이 고아라는 사실과, 그리고 어머니를 생각했다. 약을 드셨죠? 주사도 맞고. 하지만 그것은 병을 치료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고통을 없애줄 뿐이에요. 당신은 죽을 겁니다. 그랬다. 모두가 죽을 것이다. 언젠가는, 지금 지상에 살아있는 모든 사람들이, 100년쯤 지나면 한 명도 남지 않고 죽어없어질 것이다. 심지어 저 태양도 언젠가는 사라지고, 마치 불이 꺼지듯이 우주도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전혀 허무주의적이지 않다. 그는 비로소 다시 살아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왜 어머니가 그 의사에게 고맙다고 말했는지 알 것 같았다. 그는 태양이 좀 더 높이 떠올라서, 방 안의 빛이 점점 줄어들 때까지, 그리고 완전히 어두워질 때까지 방 안에 누워 있었다. 그리고 금방 아까의 그 생각을 잊어버렸다. 그에게는 아무 고통이 없었으니까. 그저 약에 취해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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