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재
결혼의 이유 본문
그녀는 자신이 남편과 결혼한 이유가, 그러니까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그와 결혼한 이유가 엄마 때문이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 친구들이 입을 모아 말했듯이 그는 결혼상대로는 어울리지 않았다. 몇몇 사람은 그녀가 아예 결혼에 관심이 없을뿐더러, 어쩌면 평생 독신으로 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그들에게도 그녀의 결혼보다 상대가 그라는 사실이 더 놀라운 일이었다. 그렇다고 그녀가 이전까지 전혀 연애를 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다. 그녀 주위에는 남자가 끊이지 않았다. 그녀는 어딜 가나 눈에 띄는 미녀였고, 언제나 미소 짓는 얼굴에 활달한 성격이었다. 그녀는 명문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대기업에 입사했다가 1년 만에 때려치우고, 곧바로 전공과는 전혀 무관한 회계사 시험을 준비해서 전공자보다도 더 짧은 시간 내에 자격증을 취득했다. 몇 년 경력을 쌓은 후에는, 실무능력은 말할 것도 없이, 누구와도 어울리는 친화력, 탁월한 리더쉽, 또 추진력 등으로 이름이 알려졌고, 기존에 몇 배의 연봉을 제시하는 회사들이 줄을 섰다. 누구도 그런 완벽한 그녀의 배우자를 상상하기는 어려웠다. 그녀에게 어울리는 짝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래서 처음 그녀가 그와 만나기 시작했을 때, 사람들은 그가 겉보기와 달리 무언가 대단한 것을 숨긴 남자로 여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그게 무엇인지 사람들은 알 수 없었다. 사실을 말하면 그녀도 처음에는 몰랐다. 그녀는 결코 속물적인 여자는 아니었지만 그렇다 해도 막연히 자신과 같은 전문직종에 근무하거나, 아니면 돈을 많이 벌지는 못하지만 어쨌든 자기 일을 갖고 그 일에 자부심을 가진 남자가 자신의 미래의 남편이 될 거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는 어느 쪽도 아니었다.
그런데 왜? 그녀가 그와 결혼을 결심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그가 언제나 완벽히 그녀의 편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그녀의 부탁이나 요구에 ‘노’라고 대답하는 법이 없었다. 그렇다고 그녀를 공주처럼 떠받들었다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그 남자의 천성처럼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그녀는 회사에서 아무리 나쁜 일이 있었다 해도 그의 얼굴을 보자마자 금방 잊어버릴 수 있었다. 그와 함께 있으면 마치 온 세상이 다 자기편처럼 느껴졌다. 물론 현실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그는 그녀에 비해서뿐만 아니라, 그녀가 아는 대부분의 남자에 비해서도 거의 무능력자에 가까웠다. 실제로 그가 어떤 문제를 해결해 줄 거라고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이제 서른 중반에 이르른 그녀는 사람의 일이 그렇게 눈에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자기 자신의 경우만 해도 그렇지 않은가? 주변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했던 일 중의 하나는 그녀의 언제나 밝은 모습 이면에 있는 상상키도 어려운 어두운 면이었다. 그녀는 자기 주관이 뚜렷하고 똑 부러지는 여자였지만, 누구보다도 자유롭고 또 마음먹기만 하면 무엇이든 해낼 수 있는 슈퍼우먼처럼 보였지만, 단 한 번도 자신이 자유롭다 느낀 적이 없었다. 단 한 번도 자기 뜻대로 해본 적이 없다고 느꼈다.
문제는 그녀의 엄마였다. 언제부터 엄마와 사이가 틀어졌는지 그녀는 알 수 없었다. 따져보면 최초의 조짐은 대학입시 때부터였는지도 몰랐다. 전공을 정하는 데 사소한 의견차이가 있었다. 하지만 이전부터 주욱 그래 왔듯이 당시 그녀는 자연스럽게 엄마의 의견을 따랐다. 그러니까 의심이랄까, 괴로움이랄까 하는 감정이 생긴 건, 그보다 훨씬 후의 일이었지만, 그녀는 때때로 대학입시가 그 시작이라고 착각했다. 그녀는 소리쳤다. 그때도 그랬잖아. 엄마가 원한 전공으로 했잖아. 그러면 엄마는 그녀만큼 크게 소리쳤다. 그게 어떻게 내가 원한 일이야. 네가 원한 거지. 한번 균열이 발생하자 걷잡을 수가 없었다. 모든 일에 두 사람은 충돌했다. 옷을 고르는 일부터, 어학연수, 취업, 회계사가 되는 일, 여자친구 등등. 엄마는 그녀가 하는 모든 결정에 영향력을 끼쳤다. 그녀는 대학을 졸업한 순간부터 하루도 집을 나가는 것에 생각하지 않은 날이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충분히 그럴 능력을 갖춘 후에도 그녀는 여전히 엄마와 아빠가 있는 집에 남았다. 그를 처음 집으로 데려가면서, 그녀는 당연히 엄마가 결혼을 반대하리라고 예상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반드시 내 뜻대로 하겠다, 엄마를 이기겠다 마음먹었다. 그녀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두 사람은 십 년 만에, 아니 과장되게 말하면 엄마와 딸로 관계를 맺고 나서 최초로 완벽한 의견일치를 이뤘다. 한판 싸움을 준비했던 그녀에게 맥 빠지는 일이었지만, 또 그렇게 돼서야 엄마를 이겼다고 할 수 없는 노릇이었지만, 어쨌든 그보다 기쁨의 감정이 더 컸다. 기뻐해야 할 일은 또 하나 있었다. 그 후에도 엄마는 사사건건 그녀의 결정에 태클을 걸었지만, 어쩐지 사위에게는 ‘노’를 하는 법이 없었다. 일은 간단했다. 그녀는 자신이 원하는 일이 있으면 남편에게 말하면 됐다. 남편은 그녀의 요구에 ‘노’를 하지 않았고, 엄마는 남편의 요구에 ‘노’를 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그녀의 요구에는 ‘노’가 없었다. 결혼식장을 정하는 일부터, 웨딩드레스나 신혼여행지, 신혼집, 그 모든 일이 그녀의 결정이었다. 그녀는 그제야 그와 있으면 세상이 자기편처럼 느껴진 게, 단지 느낌에 불과한 것,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정말 자신이 슈퍼우먼이 되었다고 느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되었을까? 그녀는 거울 속의 자신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거기에는 슈퍼우먼과는 거리가 먼, 그리고 5년 전의 자기 자신과도 먼, 아니 자기 인생에서 단 한 번도 그렇게 되리라 상상도 못했던 낯선 여자가 서 있었다. 그녀는 더 이상 미녀가 아니었고, 능력 있는 커리어우먼도 아니었다. 딱히 뭐가 이유였는지 알 수 없지만 그녀의 경력은 결혼 후 급속히 사양세로 접어들더니 완전히 박살이 났다. 이제 아무도 그녀에게 눈길을 주지 않았다. 심지어 그녀를 무서워하는 사람도 생겼다.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 일에 불같이 화를 냈다. 5년 전만 해도 사람들은 그녀가 서른 다섯 살이란 걸 믿지 못했는데, 5년이 지난 후에는 반대의 이유로 그녀가 마흔 살이란 걸 믿지 못했다. 그녀는 잘 웃지 않게 되었다. 어떤 것도 그녀를 즐겁게 만들지 못했다. 단 하나, 남편을 제외하면 말이다. 그녀는 결국 직장을 그만두고 전업주부가 되었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결혼 후에 남편이 시작한 사업이 뜻밖에도 큰 성공을 거뒀기 때문이었다. 그전까지 남편은 잘 봐줘 봤자 아르바이트에 불과한 일을 전전했었다. 남편의 성공에 가장 기뻐한 사람은 그녀보다 그녀의 엄마였다. 모르긴 몰라도 그렇게 성공할 수 있었던 데는 엄마의 남모를 도움이 있었을 것이다. 두 사람은 모든 면에서 죽이 잘 맞았다. 그녀와 보내는 시간보다 엄마와 보내는 시간이 더 길게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그녀는 상관없었다. 어쨌든 남편은 그녀의 요구에 여전히 ‘노’라고 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만일 이제 엄마와 밖에서 단둘이 만나 식사를 하지 말라고 해도 남편은 결코 ‘노’라고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그녀는 문득 생각했다. 언젠가부터 그녀는 남편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다. 내가 이제 더 이상 바라는 게 없는 걸까? 단지 그가 내 곁에 있는 것만으로 모든 게 충족된 걸까? 그녀에게 든 진짜 무서운 생각은, 남편이 언젠가는 ‘노’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언제든 그런 순간이 올 거라는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다고 느꼈다. 진짜 무서운 생각은, 바로 그 순간을 피하기 위해, 자신이 더 이상 그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못하는 게 아닐까 하는 것이었다. 남편은 언제나 말했다. 네가 원하는 대로 해. 나는 언제나 네 편이니까. 그녀는 그 말만큼 무서운 말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