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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재

돌아오지 않는 화살 본문

소설

돌아오지 않는 화살

물고기군 2013. 7. 19. 16:57

학생회관 건물에는 엘리베이터가 없었다. 9층까지 있었는데도 왜 엘리베이터가 없는지 그는 이해할 수 없었다. 아마 단순히 아주 예전에 지어진 건물이기 때문일 것이다. 요즘에는 찾아보기 어렵다. 같은 시기에 지어진 대부분 건물은 이미 다른 최신식 건물로 대체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저 건물은 아직 남아있다. 7층에 총학생회 사무실이 있었다. 9층이 아닌 게 다행이었다. 7층까지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는 남들에 비해 불평이 적었다. 그는 타고난 강골이었다. 비록 몸집은 자그마하고 마른 편이었지만, 누구보다도 힘도 셌고, 체력도 좋았다. 그러나 그런 그도 1991년의 봄은 견디기 어려웠다. 무슨 일인가로 지하창고를 쓸 수 없어서, 시위용품들을 7층 복도에 두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그것을 운반해야 했다. 특히 앰프를 옮기는 일은 지옥이었다. 그때도 그만이 한 번도 쉬지 않고, 1층에서 7층까지, 또 7층에서 1층까지 앰프를 지고 오르내렸다. 물론 그라고 그 일이 쉬웠겠느냐마는 그는 한 번 멈춰 서면 그만큼 더 힘들어질 뿐이라고 생각했다. 물러서면 안 된다고. 

대학 1학년부터 그런 그의 타고난 힘과 체력, 그리고 성실성은 유명했다. 하지만 선배들은 그가 훌륭한 학생운동가는 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에게 부족한 것은 학습능력이었다. 2학년이 되어서도 세미나를 진행하는 역할을 맡지 못했다. 물론 그를 좋아하는 선배나, 후배는 많았다. 그는 어쨌든 타고난 일꾼이었고, 누구에게도 아무 불평을 하지 않았다. 몸을 쓰는 일이라면 언제든 그가 가장 먼저 불려졌고, 그는 언제라도 준비되어 있었다. 무거운 것을 나르는 일뿐만 아니라, 그의 또 다른 장점은 높은 곳에 오르는 것이었다. 무대장치를 조립하거나, 대형걸개를 걸거나 할 때, 그는 마치 원숭이처럼 두려움 없이 재빨리 꼭대기까지 올랐다. 아시바를 조립하는 속도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어느 날, 그의 후배 중 하나가 자기 몸에 불을 붙인 채, 건물 3층 난간에서 뛰어내렸을 때도 그는 근처에서 작업을 하던 중이었다. 그가 있던 곳도 거의 3층 높이였지만, 불길에 휩싸여 바닥에서 뒹구는 후배를 보았을 때, 그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뛰어내렸다. 그 일로 그는 한쪽 발목 인대가 끊어졌고, 여러 달 동안 깁스를 한 채 학생회관을 오르내려야만 했다. 그리고 이제 이십여 년이 지난 현재에도 신경 써서 걷지 않으면 쩔뚝이는 것처럼 보였다. 후배의 유서에는 여러 말이 적혀 있었지만, 그중에서 그가 인상깊게 읽었던 문구는 ‘돌아오지 않는 화살이 되어’였다. 이제와서는 뭐가 뭔지 알 수 없었지만, 그때는 모든 게 너무나 분명했다. 그것은 전혀 어리석은 행동처럼 느껴지지 않았고, 오히려 숭고한 행위로 느껴졌다. 그는 아주 깊은 슬픔을 느꼈지만 역설적으로 그만한 기쁨도 느꼈다. 이제 곧 모든 것이 바뀌리라 생각했고,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남은 사람들의 열정밖에 없는 것 같았다. 그는 1991년이 지나고, 92년, 93년이 될 때까지도 학교에 남았다. 졸업을 연기하면서 5학, 6학까지 버텼다. 그러나 그 무언가는 항상 그의 앞에, 비록 아주 조금이었을 뿐이라도, 언제나 손닿지 않을 만큼의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는 것 같았다. 지금의 아내를 만난 것도, 학생회관에서였다. 그녀는 신입생이었다. 어느 날 술을 마시며 우르르 몰려다니다 마지막으로 건물로 돌아왔다. 문이 잠겼는데 아무도 열쇠가 없었다. 그는 복도 창문을 통해 난간을 넘어 사무실 창문을 열고 들어가 문을 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난간과 난간 사이를 뛰어서 건너야 했다. 비록 먼 거리는 아니었지만, 7층 높이였다. 아내는 그런 그를 봤고, 거기에 무언가가 있다고 느꼈다. 용기 이상의 무언가. 다른 사람들은 그저 미친 짓이라고 여긴 그의 행동에서. 

운동에서 손을 떼고 그가 제일 먼저 직업으로 삼은 일은 학습지 교사였다. 세미나도 진행하지 못했던 그에게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일이었다. 그래도 1년은 버티라고 아내는 말했다. 그래야 퇴직금이라도 받을 수 있다고. 하지만 학습지 교사는 개인사업자였다. 퇴직금이 있을 리가 없었다. 그는 어리둥절했다. 그런 일들이 계속되었다고 말하는 게 맞을 것 같다. 자식이 생기면서, 그의 힘과 체력, 타고난 성실성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그 가족을 지켜주지 못했다. 운이 좋았던 때도 있었다. 마지막에는 운이 나빴다. 그는 모은 돈을 탈탈 털고, 대출까지 껴서 목좋은 대리점을 인수했다. 권리금만 1억이 넘었다. 그건 사기라고도 할 수 없었다. 아무도 그를 속이지 않았지만, 어쨌든 무언가가 그를 속였다. 지금은 의료장비업체의 영업직으로 일하고 있다. 매일 수 십군데의 개인병원, 특히 치과를 돌아다녀야 했다. 인대가 끊어졌던 발목이 말썽이었다. 해가 질 무렵이면 발과 발목이 퉁퉁 부어 올랐다. 그는 그 시절 자신이 하루에도 몇 번씩 오르내렸던 학생회관이 보이는 병원의 옥상을 발견했다. 그는 며칠 내내 일과의 마지막을 그곳에서 보냈다. 아내는 아이가 사립초등학교에 다니길 원했다. 1년에 등록금만 천만 원이 넘었다. 그 돈을 대기 위해서, 자신이 하루에 몇 군데의 치과를 돌아다녀야 하는지, 그는 정확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하루는 너무 짧았고, 몸도 예전 같지 않았다. 그는 결국 멈춰야 했다. 멈춰서 쉬어야만 했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건물에서 거의 자기 몸의 반 정도 되는 커다란 앰프를 등에 지고 7층까지 오르는 일은 정말 힘들었다. 그래도 그는 한 번도 쉬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너무 지쳤다.

그는 구두를 벗어 가지런히 바닥에 두었다. 퉁퉁 부은 발목 때문에 다시 신으려면 고생 꽤나 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이 맞는지 틀리는지 그는 잘 알 수 없었다. 내가 다시 신어야 할까? 왜 자신이 구두를 벗었는지 그는 몰랐다. 내가 지금 뭘 원하고 있는 거지? 그는 난간에 올랐다. 해가 지고 있었다. 주변은 샛노랗게 물들었다. 모든 게 너무 오래전에 일어난 일이었고, 단 하루도 그날로부터 멀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혁명은 추억이 될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이 진짜 노동자, 철의 노동자가 되길 원했다. 돌아오지 않는 화살이 되어, 적의 심장을 향해서 쏘아지길 바랐다. 그에게는 항상 그런 용기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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