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재
입장에 대해서 본문
누군가 곽노현 사태에 대해서, 만일 그가 보수였다면 어떻겠냐는 트윗을 올렸다. 그때도 우리는 그를 지지하겠느냐고? 요컨데 입장을 바꿔놓고 보라는 것인데, 이 말이 인문학을 공부한 소위 진보 지식인에게서 나왔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이것은 마치 여성의 차별철폐를 위한 일련의 조치들이 남성에 대한 역차별이 아니냐는 논리와 흡사한데, 문제는 여성과 남성의 입장이 완전히 동등해질 수 있는 어떤 지점이 있어서 그곳에 도달하기 위해 우리가 그 둘의 입장을 끊임없이 대조하고 때로 바꿔놓기도 하면서 정량적으로 조절할 수 있다는 순진한 믿음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그 둘의 입장을 결코 바꿀 수 없다는 데 있다.
만일 그렇게 입장이 쉽게 바뀔 수 있다면, 그건 '생각해 보자'고 할 필요도 없이 그냥 바꾸면 되고, 애초에 차별자체도 없었을 것이다. 물론 법 앞에 만인은 평등하므로, 우리 모두는 법적 의미에서 언제나 서로 입장을 바꿀 수 있는 개념으로 취급된다. 그러나 이 얼마나 우스운 말인가? 만인이 평등하다니.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모두 절절하게 바라는 일이 아닌가? 개인이 처한 상황과 사회적 맥락들을 간단히 제거해버리고, 더불어 그런 개인들을 포함하는 사회구조나 체계의 문제를 덮어둔 채, 단순히 개인 대 개인의 문제로 치환해서 입장을 바꿔놓자는 것은, 언제나 그 사회에서 유리한 입장에 있는 지배체계의 뻔한 이데올로기가 아닌가?
아주 단순히, 만일 곽노현이 보수였다면, 아니 어떤 보수 교육감이 곽노현과 똑같은 상황에 처해있다면 그가 과연 곽노현과 똑같이 행동했을까? 만일 그렇다면, 처음에 저 진보 지식인이 얘기한 것처럼 그 상상 속의 보수 교육감이 곽노현과 똑같이 행동했다면, 당연히 그때도 우리는 그를 지지할 것인데, 왜냐하면 그 세계에서는 검찰과 언론이 진보의 편일 것이고, 차별받는 쪽은 남성일 것이기 때문이다. 대체 어떤 입장을 바꿀 수 있다는 말인가? 우리는 단 한번도 그런 세계에서 살아본 적이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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