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cent Posts
Recent Comments
«   2025/01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관리 메뉴

시간의재

공정함에 대해서 - 너에게 본문

단상

공정함에 대해서 - 너에게

물고기군 2011. 12. 31. 12:43

오래 전에 쓴 ‘떠나간 여자, RN-J, 낙서’라는 소설에서 나는 ‘떠나간 여자에 대해 누구도 공정하게 말할 수 없다.’고 썼다. 그러나 이제 그 말을 반대로 해야할 것 같다. 어쩌면 우리가 공정한 태도로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가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떠나간 여자’일 거라고. 마치 진정으로 존경할 수 있는 위인은 항상 죽은 사람인 것처럼. 물론 문제의 핵심은, 떠나간 여자이든, 아니든, 아니, 그 누구에게도 우리는 완벽히 공정할 수 없다는 데 있지만, 이러한 결론은 너무나 손쉽고, 대개 아무 의미가 없다. 상황은 훨씬 미묘하고 복잡하다.

며칠 전 술자리에서 이와 비슷한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나는 그때 소설쓰기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의 문제점은 내가 소설을 쓰면서 공정하기를 바란다는 데 있다는 것이다. 물론 여기서도 문제는 내가 한번도 그 공정함에 성공하지 못했다는 것,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히 그러지 못할 거라는 데에 있지 않다. 그것은 사실이지만 말이다. 문제는 내가 그것을 바란다는 데에 있다. 그것이야말로 진짜 잘못된 것이다. 왜냐하면, 단순히 내가 그럴 수 없는 걸 바란다는게 문제가 아니라, 그 공정함이 언제나 전적으로 나 자신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타인에 대한 완벽한 공정함이란, 자기 자신에 대한 무한한 이기심 외에 아무 것도 아니다. 단지 다른 사람들에게 나 자신이 얼마나 공정한지 보아라, 라는 식의 자기 현시적 태도, 잘난 척, 오만함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무한한 이기심이란, 나는 어쨌든 그 모든 상황에 대해 아무 관련이 없다는 태도이다. 무한한 이기심이란, 때로 무한한 자기방기와 똑같다. 그것은 자기를 끊임없이, 상황에서, 이 세계에서 지워내려는 태도이다. 헤겔이라면 물론 이것을 ‘아름다운 영혼’이라고 불렀을 것이다. 그러한 태도는 소설 뿐만 아니라, 어떠한 글쓰기에서도 가장 최악의 것이다. 심지어 철학에서도 그렇다. 이 점에 대해서는 ‘마르크스’의 유명한 경구를 떠올려보는 것도 좋다. 철학의 목적은 세계를 해석하는 데 있는 게 아니라, 변화시키는 데 있다.

상황의 복잡성은 사실 이렇다. 내가 누군가에 대해 공정하려 애쓴다는 것의 의미는, 내가 그와 전혀 무관한 사람으로 순전히 그 사람을 나와 떨어진 객체로 바라보려는 데 있는데, 이것의 결과는 그럴 때, 나는 그 타인 뿐만 아니라. 나 자신도 보지못하는 것이다. 내가 소설쓰기를 통해, 타인이나, 또는 이 세계를 공정하게 그리려 애쓰면 애쓸수록, 나는 진짜 ‘부당함’에, ‘무지’에 빠지게 되는 셈이다. 진짜 ‘무의미’를 만나게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역설적으로, 공정함에 대한 나의 욕망은 정말 떨쳐내기가 어렵다. 그것이 진짜 공정함이 아니고, 언제나 나 자신을 속이는 일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마치 나 자신이 진짜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질 때, 나 자신이 영원히 이 세계에서 이방인인 것처럼 느껴질 때, 내가 쥐고 있어야 할 마지막 것이, 마치 그 ‘공정함’인 것처럼. 생각해보면 그것은 가능한 일일지 모르겠다. 나는 언젠가 완벽히 공정해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때에 진짜 나는 아무 것도 아닌 존재가 되는 것이리라. 거의 살아있다고 볼 수도 없을 것이다.

이것에 대한 절절한 묘사는 아마도 인터넷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하루키의 ‘한밤의 기적소리’라는 수필에 나와 있다. 그것을 이 자리에 모두 옮길 수는 없지만, 일부를 적자면 다음과 같다.

“그렇지만 그때 저 멀리에서 기적 소리가 들려. 그것은 정말로 정말로 먼 기적 소리야. 도대체 어디에 철도 선로 같은 것이 있는지 나도 몰라. …… 나는 어둠 속에서 가만히 귀를 기울여. 그리고 다시 한번 그 기적 소리를 듣지. 그리고 나서 내 심장은 아파하기를 멈춰. 시계 바늘은 움직이기 시작해. 철상자는 해면을 향해서 천천히 떠올라. 그것은 모두 그 작은 기적 소리 덕분이야. 들릴 듯 말 듯한 그렇게 작은 기적 소리 덕분 이라고. 나는 그 기적 소리만큼 너를 사랑해"

때로 나를 정말 불편하게 하는 것이, 그녀가 내게 공정함을 원할 때라는 게, 정말 이상하게 느껴지고는 했다. 동시에 내 자신이 다른 누구보다도 그녀에게 불공정하다는 것, 부당하다는 것이, 괴롭게 느껴지기도 했다. 물론 거기에는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결코 간단하지는 않다. 하지만 내가 생각해낼 수 있는 유일한 변명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나는 너에게 결코 공정하고 싶지 않다.’는 것일 것이다. 너에게까지 내가 공정해진다면, 나는 정말 ‘깊은 바닷속에 가라앉은 두꺼운 철상자에 갇혀’ 버리게 되는 것과 같다고 말하는 것이리라. 너를 부당하게 대하는 것, 사소한 내 이기심을 드러내는 것, 진짜 내 두려움을 드러내고, 나의 불편부당함을, 유치함을 드러내는 것, 아마도 그걸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진짜 특별함은, 그런 부당함 속에서만 드러나는 게 아닐까? 그리고 그때에, 며칠 전 술자리에서 말했던 것처럼, 너를 통해서 나 자신을 볼 수 있으리라. 이것이 진짜 나의 이기심이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