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재
민주주의의 자살 본문
선거가 끝난 후 각종 말들이 많다. 새누리당의 압승이니, 민주당이나 야권연대의 패배라느니. 또 MB심판이 아니라 무능력한 민주당에 대한 심판이라느니. 물론 이런 말들이나 수사, 관형적인 표현들에 딴죽을 걸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그렇다하더라도 가만 따져보면 사실, 승리라느니, 패배라느니, 심판이라느니 하는 말들은 어떤 잘못된 가정에 근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적어도 민주주의의 본질적 의미에서, 투표를 통해 여러 가치나, 신념, 또는 인물들 중에 하나를 뽑는다는 것은, 누군가의 승리나 패배와는 거리가 있는게 아닐까? 그것은 아주 단순한게 말해서, 민주주의적 절차를 통해, 아름다운 합의에 이르는 것이다. 그렇다. 그것을 아름답다 부르지 않을 재간은 없다. 그것은 분열에서 통일로 나아가는 거고, 그래서 투표를 민주주의 꽃이라 부르는 것이다. 물론 투표에서 졌다는 표현은 가능하다. 낙선한 후보, 소수가 된 정당, 또는 자신의 지지가 선택받지 못한, 다수가 되지 못한 어떤 유권자들. 그들이 졌다고 말하는 것은 맞는 말이다. 그들의 패배감은 충분히 타당하다. 하지만 본질적 의미에서 민주주의는 게임이 아니고, 스포츠도 아니며, 승자와 패자를 가르는 규칙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적어도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민주주의는 언제나 승리하는 게임이라고. 왜냐하면 언제나 다수가 원하는 선택이 이기기 때문이다. 다수가 원하는데도, 그 뜻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만 민주주의는 졌다고 말할 수 있다.
새누리당이 이겼는가? 그렇지 않다. 반복되는 얘기지만 본질적 의미에서 새누리당이나, 아니면 선거에서 이겼다고 말하는 그 누구라도, 그들은 단지 다수가 원하는 어떤 행위, 정책, 신념을 위임받았을 뿐이다. 기본적인 의미에서 그들은 일종의 ‘도구’에 불과한 것이고, 진정한 승리자는 그들을 뽑은 유권자이며, 또한 그렇게 다수가 된 유권자들이다. 그리고 만일 우리가 민주주의의 가치를 인정하다면, 그들을 뽑지 않은 유권자 또한 승리자이다. 왜냐하면 결과가 비록 자신의 선택이 아니었을지라도 다수의 선택에 어쨌거나 승복하겠다고 이미 동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패배라고 말하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보자면, 그 민주주의적 가치에 대한 몰이해거나 반감에 기초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 그들은, 패배라고 말하는 자는, 그래서 이민을 가고 싶다고 말하는 자는, 말 그대로 이민을 가지 않고서는 진짜 패배할 수 없다. 그 패패를 진정으로 받아들이는 행위는, 단지 이 사회, 이 나라, 대한민국을 떠나는 것외에 어떤 것도 될 수 없다. 우리 모두가 이번 선거에서 승리자이고, 언제나 승리자일 것이다.
이것이 민주주의다. 나는 이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잘 모르지만, 적어도 결코 유쾌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은 잘 느낄 수 있다. 그리고 또한 앞서 열렬히 말했던 대로, 나 역시 이번 선거의 승리자일수밖에 없지만 결코 유쾌한 승리자는 아니라는 점도 밝히고 싶다. 그러나 이번 선거는 단지 불유쾌한 승리자에 그치는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정확히 말해서, 단지 불유쾌한 정도가 아니라, 나는 아주 두려움에 빠진 승리자가 된 것만 같다. 나는 이제껏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 또 그 중에서 잘못된 의견을 가진 사람, 그런 선택에 대해 단순히 그들이 나보다 이기적이거나 멍청하거나, 말 그대로 아무 생각도 없는 돌대가리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쉽게 생각해왔다. (물론 내가 멍청하고 뭘 잘 모르기 때문일 수도 있다.) 어쨌든 둘 중의 하나. 이기적이거나 멍청하거나. 이기심은, 민주주주에서 기본적인 소양이므로 문제될 게 없다. 다수의 이기심이 이기도록 하는게 민주주의니까. 멍청함은, 더 큰 문제일 수 있지만, 똑똑한 사람들이 열심히 노력하면, 또한 시간이 흐르면 해결될지 모른다. 하지만 이번 선거 결과에서 나와 다른 선택을 한 사람들에 대해 나는 뭐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내가 보기에, 그들은 민주주의 그 자체를 버리려는 사람들 같다. 삼권분립이니, 언론의 자유니 하는 가치들을. 어떤 정책이나 신념의 문제가 아니다. 보수니 진보니, 또는 우파니 좌파니 하는 문제가 이니다. 또 그들이 더 이기적이고 사심에 가득차 있어서, 그들이 어떤 불의를 행하고, 정의롭지 못하다는 게 문제가 아니다. 그들은 민주주의라는 가치를 근본에서 흔든다. 적어도 그렇게 드러나고 있다. 상당히 의심할만한 근거가 있다. 나는 결코 그들을 선택한 다수들이, 단지 그들이 그러지 않았을 거라고 강하게 믿고 있기 때문에 그들에게 표를 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무서운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해도 된다고 생각해서 그들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내가 무서운 것은, 이 결과가, 아무런 하자 없어, 어떤 부정이나 조작없이, 아주 민주적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누군가는 승리했다고 하고, 누군가는 패배했다고 한다. 내가 무서운 것은, 민주주의가 민주주의 그 자체를 살해할 수 있는 가능성이다. 내가 무서운 것은, 어쩌면 지금 당장이라도, 민주주의 그 자체를 두고 투표를 벌인다면, 이를테면 언론의 자유도 없고, 삼권분립도 없고, 의회 민주주의도 없고, 기타 등등, 더 나아가 이제 영원히 투표라는 행위자제도 없애버리겠다는 것을 두고, 투표를 벌인다면, 나는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어쩌면 다수가 그렇게 하겠다고 선택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진정으로 탈근대적인 해체가 아닌가? 시스템이 스스로 자살하는 것과 마찬가지 아닌가? 만일 우리가 논문을 표절한 교수를 받아들인다면, 우리가 받아들이는 것은 그러한 시스템 전체다. 왜 이것이 하나도 중요하지 않은 것인가? 아니다. 그 정도는 결코 중요하지 않을지 모르겠다. 이제 민주주의가 민주적 방법에 의해, 살해되고 있는 걸 보고 있지 않은가?
누군가는 승리했다고 하고, 누군가는 패배했다고 한다. 하지만 민주주의는 언제나 이길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것이 스스로를 살해했을 때조차, 민주주의는 승리한 것이다. 나는 어쩌면 이것이 새로운 출구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해본다. 그렇다면 자본주의는 어떻게 스스로를 살해할 수 있을까? 어떻게 내적으로 자살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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