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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할머니의 볶음밥 본문

단상

외할머니의 볶음밥

물고기군 2010. 3. 2. 13:51

어렸을 때 학교에 갔다오면 점심으로 두 가지 메뉴 중에 하나를 선택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김치볶음밥과 라면이다. 이제 생각하면 보온밥솥이 아니라서 찬밥 밖에 낼게 없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랬다. 예전에는 스텐레스 밥그릇에 뜨거운 밥을 담아서 이불같은데 넣어두고는 했다. 그건 외할머니의 메뉴였다. 특별히 어느 쪽을 좋아하고 자주 선택했는지 모르겠지만, 김치볶음밥은 정말 매웠다. 나중에 내가 스스로 밥을 챙겨먹을 때 즈음 그 김치볶음밥이란 걸 해봤다. 근데 아무리해도 그렇게 매운 맛을 낼 수가 없었다. 김치가 달라서? 아님, 그때는 어렸기 때문에? 뭐가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생각하면 그건 고작 김치볶음밥이었다. 그러니까 그냥 김치와 밥밖에 없었다.

내가 십대 후반 이십대 초반 즈음에 '코코프라이드라이스'라는 볶음밥 전문집이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철판볶음밥전문점이었다. 카운터에 앉으면 볶는 걸 직접 볼 수도 있다. 당시로는 인테리어도 세련된 서구식이었고, 눈앞에서 볶는다는지 하는 획기적인 서비스형태도 그렇고 해서 꽤나 인기를 끌었다. 가격도 만만치 않았던 걸로 기억하는데, 여자친구, 또는 이제 막 만난 소개팅녀를 데리고 갈 법한 곳이었다. 그런데 그게 그만큼 맛있었냐하면 그렇지는 않았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 매운 음식이나, 뜨거운 국물음식을 좋아하는 탓도 있다. 하지만 그 집을 생각하면 마음이 좀 흐뭇해지는데, 그건 표현 그대로 '풋풋했던' 그 시절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비법이 뭘까? 어떻게 외할머니의 볶음밥은 그렇게 매웠을까? 소금을 더 쳐볼까? 아님 다진 마늘을 넣어봐야 하나. 김치를 먼저 볶아보기도 하고, 밥을 먼저 볶아보기도 한다. 하지만 아직도 그 맛이 나오지 않는다.

외할머니는 집에서 돌아가셨다. 나는 그 밤에 그 집에 찾아갔다. 사람들이 침대 주위에 모여 있었고, 나는 몇발짝 떨어져 서 있었다. 얼마 있다 앰블런스가 왔다는 말이 전해졌다. 주황색 유니폼을 입은 구급요원들이 들것을 가지고 들어왔고, 기타 등등, 기타 등등. 우리는 엘리베이터를 타야만 했는데 들것을 뉘인 채로 타기에는 너무 좁았다. 어쩔 수 없이 세워야만 했다. 내내 외할머니는 하얀 천으로 덮여져 있었다. 몇층인가에서 문이 열리고 아줌마 하나와 아이 하나가 문밖에 서 있었다. 그냥 보내버릴 법도 한데 무슨 급한 일이 있었던지 아줌마는 아이를 데리고 기어이 엘리베이터에 올라섰다. 아이는 비뚜름하게 기울여 세워져 있는 들것을 봤다. 나는 그런 아이의 시선을 계속 좆고 있었는데, 왜인지는 모르겠다. 마침내 아이와 시선이 마주쳤다. 내가 외할머니의 볶음밥을 먹던 나이보다는 몇 살쯤 어려보였다. 그리고 내가 코코프라이드라이스에서 실없는 농담이나 지껄이며 여자를 만나던 나이보다는 훨씬 더 어렸다.

이제 그 아이는 그 시절의 나만큼이나 나이를 먹었을 것이다. 자위행위도 하게 되고, 어쩌면 섹스도 이미 경험했는지 모르겠다. 이렇게 말하는 게 가능하다면 우리 세대는 이제 더 이상 젊지 않다. 이런 생각을 하는 건, 뭐라해도 좀 씁쓸한 일이다. 하지만 뭐가 있겠는가? 인생이란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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