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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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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어른이 될 것

물고기군 1999. 12. 20. 03:19
오후 네 시, 권호와 규열이를 보내고 나머지 시간 내내 TV를 보며 하루를 보낸다. 중간에 친구에게 전화가 와서, 월요일 날에 내려고 했던 레포트를 낼 필요가 없다고 전해주었다. 설마 재수강 시키겠냐, 라는 게 그 친구 말의 요지였다. 그래, 끝났다. 논문도 냈고, 마지막 시험도 치렀고, 더 이상 쓸 레포트도 없다. 대학생활이 끝난 것이다. 물론, 대학원에 진학했으므로, 별 다른 의미는 없다. 난 여전히 학교를 나가야 할 것이고, 앞으로 또 2년 어떻게 어떻게 꾸려질 것이다. 한없이 한심하고, 또 한없이 무가치한, 유보.

취할 정도로 술을 마시고, 취하고, 기억도 하지 못할 말들을 배설처럼 쏟아내고, 또 뭐가 그렇게 심각한지. 분명 난 들떠 있었다. 다시 나한테 돌아오지 못할 말들을 지껄여댄 걸 보면. 선배 중 하나가 어른이 된다는 것에 대해 얘기했다. 그 말은 나를 흔들었다. 그랬다. 난 여전히 어리광을 부리고 있었던 거다.

어른이 될 것. 그다지 심각한 기분은 아니다. 단지 좀 막막해져 있을 뿐이다.

7년 전, 그러니까 내가 1학년 1학기 첫 번째 수업 날, 학교를 올라가는 길에 동기여자를 만났다. 그녀는 반짝반짝 윤이 나는 새 구두를 신고 있었고, 난 그녀에게 엄마가 입학선물로 사준건가, 라고 농담처럼 물었다. 어느 날에는, 그 반짝반짝 빛나던 새 구두가 더 이상 윤이 나지 않고, 구두코는 뭉특해지고, 볼은 넓어질 거라고 생각하면, 바닥 없이 우울해지곤 했다. 이젠, 새 구두가 아니야. 무엇이든 다 낡아지기 마련이지. 하지만, 그래도 반짝반짝 빛 나는 새 구두는 사람의 마음을 들뜨게 한다. 그 구두가 낡아질거라 해서 구두의 반짝임이 아름답지 않은 건 아니다.

반짝반짝 빛나는 새 구두, 기분이 우울해질 때 그런 걸 떠올리면 된다. 지금 당장 신발장에 가서 반짝 반짝 빛나는 새 구두를 꺼내어, 내일 당장 그 구두를 신고 거리를 활보할 생각을 하면 된다. 삶과 생활 사이는 얼마나 먼 거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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