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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재

수요일의 하교길 본문

단상

수요일의 하교길

물고기군 2000. 1. 5. 00:24
또, 며칠동안 공중에 떠 있는 것처럼 보냈다. 홈이 없는 스위치를 돌리듯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하루하루가 지났다. 몇 가지 일들이 있었지만, 역시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고등학교 3년 내내 난, 수요일을 가장 좋아했다. 수요일엔 HR 시간이나 특별활동 시간이 있었고, 내 정확하지 않은 기억으로 다른 날에 비해 한 시간 일찍 모든 수업이 끝났다. 한 시간 일찍 집으로 돌아오는 걸 좋아했다. 그리고, 아 오늘은 수요일이고, 이제 목요일과 금요일만 지나면 주말이 돌아온다는 걸 알았다. 휴식이다. 얼마나 많은 수요일을, 또 얼마나 많은 수요일의 하교길을 걸었던가? 난 그렇게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고, 성장했다.

아직도 난 그 하교길의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다. 교문을 나와서, 육교를 건너고, 아파트 단지의 보도를 걷고, 철조망 사이에 난 작은 철문을 통과하고, 천막으로 되어있던 자전거 대여점과, 몇 개인가의 놀이터, 강변도로를 따라 길게 이어진 숲. 그리고, 집으로 올라가는 계단, 계단의 냄새, 바닥에 고여있는 햇빛, 창문을 통해 보이는 풍경, 벽면의 얼룩들.

십 년이나 지난 지금에도, 수요일의 하교길이 내게 들려주던, 딸칵딸칵 하는 소리를 기억한다. 그러자, 그 십 년이 아무 것도 아닌 게 되어버렸다. 마치, 앞으로의 오십 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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