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재
물고기통신 106 - 현실 속에 있는 상상 본문
최근에 제가 많은 시간을 보내는 어떤 곳에서는, 좀 더 정확히 말해서 그곳에서 ‘담배를 피우기 위해 시간을 보내는 곳’에서는 ‘높고 커다랗고 전체적으로 사각기둥의 형상을 한’ 아파트가 보입니다. 그것은 아파트이긴 한데 다른 일반 아파트들과 다르게 불립니다. 그 명칭은 아마도 관리를 위한 행정분류상의 명칭일 것입니다. 제가 알지 못하는 특징들이 있고, 그 명칭을 얻기 위해서 따라야 하는 건축법상의 자격요건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한 이유로 해서 그것은 ‘주상복합건물’이라고 불립니다. 어쩌면 좀 더 정확하고 공적인 명칭이 있을 수도 있고, 단순히 제가 틀렸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것은 지금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또 다른 이름이 있는데, 이것은 시공사에서 붙인 이름입니다. 그러니까 다른 모든 아파트, 또 ‘주상복합건물’들과 구분하기 위해 붙인 기호적인 의미에서의 이름입니다. 바로 ‘타워팰리스’입니다. 어쩌면 이글을 읽는 여러분들 중 대대수는 ‘타워팰리스’라고 하면 대뜸 머릿속에 떠오르는 게 있을지도 모릅니다. 분명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것이 ‘어떤’ 아파트인지 알고 있습니다. 실제로 본 사람들도 있을 테고, 사진을 통해서, 또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보지 못했음에도 알고 있을 겁니다. 그렇습니다. 일반적인 의미에서 그것은 상당히 ‘비싼’ 아파트입니다. 그 정확한 가격을 제가 알고 있는 건 아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살아 생전에 결코 가져볼 수 없는 돈을 지불해야만 ‘살 수 있는’(구매할 수 있고, 주거할 수 있는) 아파트입니다. 상징적인 의미에서는 ‘자본주의의 상징’, ‘최고 부의 상징’이며, ‘대한민국 최상위층’, 또는 예전에 자동차 광고의 카피를 통해 일반화된 상투어처럼 ‘대한민국 1%’들의 아파트입니다. 또한 우리나라 최고재벌그룹의 후계자가 살고 있다고도 합니다. 정말 살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바로 그것이 ‘타워팰리스’입니다. 만일 이런 표현이 가능하다면, 그 이름의 문자 그대로의 의미로, ‘왕의 궁전 - 최고재벌그룹 후계자의 궁전’, 일반인들은 감히 오를 수 없는 ‘천상의 탑’입니다. (보안상의 이유일 뿐이지만, 실제로 그곳은 아무나 출입할 수 없습니다.) 요컨대 아라비안나이트에서 ‘알라딘’이 ‘지니’에게 빌었던 세 가지 소원중의 하나였던 ‘궁전’같은 것입니다. 인간이 지은 것이 아니라, 자본이라는 마법의 힘으로 지었다고 말하고 싶기도 하지만, 이건 그저 감상적인 표현에 불과하다는 것을 인정하겠습니다.
여하튼 저는 담배를 피우면서 좋든 싫든 그것을 바라봅니다. 앞서 말했듯이 그것은 ‘길쭉하게 늘여놓은 직육면체’의 형상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정말 탑처럼 위로 올라갈수록, 그러니까 탑의 단을 쌓듯이 직육면체는 조금씩 가늘어지는데, 단순히 건축물 자체의 구조적 안전성을 획득하기 위한 공학적인 한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미적인 측면의 고려를 훼손시키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럼으로써 자칫 단순해지기 쉬운 사각형의 외관에 변화를 주어 날렵하고 미려하게 보이게 만듭니다. 인정해야할 것은 분명 그것은 겉보기에 꽤나 ‘아름답게’ 보인다는 것입니다. 좀 더 자세하게 말하면 ‘타워팰리스’는 단 한 개의 건물이 아니라 같은 형태와 높이의 네 개, 혹은 다섯 개의 건물이 모여 있는 건물군(단지)이고, 그뿐만이 아니라, 다른 시공사에서 지은, 다른 이름과 다른 형태를 지닌 여러 개의 건물들, 그러나 얼핏 보면 ‘타워팰리스’와 잘 구분되지 않는 역시 거대하고 외관적으로 수려한 건물들이 주변에 함께 모여 있는데, 진짜 아름답게 보이는 것은 그 건물들이 이루는 공간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곳은 마치 섬처럼, 또 마치 하나의 공중 도시처럼 주변의 다른 공간과는 확연히 다른 공간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때에서야 그것은 진정으로 ‘궁전’이라고 불릴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무슨 ‘천상의 도시’같은 느낌을 줄 지도 모르겠습니다. 일본의 어느 SF 애니메이션(제목이 ‘최종병기 그녀’였던가요?)에 등장하는 다분히 세기말적이면서 동시에 동화적인 설정처럼 말입니다. 그러한 느낌은 밤이 되면 더욱 설득력을 얻게 되는데, 건물들의 옥상, 그러니까 탑의 꼭대기라고 할 만한 곳에, 붉거나 노란 빛의 조명이 환하게 밝혀질 때면 말입니다. 그때 그것은 단순히 사람들의 주거를 위한 아파트처럼 결코 보이지 않습니다. 그냥 건물처럼 보이지도 않습니다. 저는 버스를 타고 지나가면서 몇 번이고 새삼스레 그 압도적인 광경에 매혹되고 맙니다. 그렇담 그것은 대체 무엇일까요?
대답은 간단합니다. 호들갑 떨지 마라. 그래봤자 그것은 ‘아파트’에 불과한 게 아닌가? 맞습니다. 다만 재빨리 ‘상당히 비싼’ 아파트라고 덧붙여야 할 테지만 그것은 어쨌든 ‘부차적인’인 문제에 불과합니다. 마치 이효리든 누구든 결국에는 다 같은 여자인 것처럼. 우리는 그러한 상상을 합니다. 저도 겉보기에는 화려해보이지만 결국에는 남들과 같은 평범한 한 여자랍니다. ‘결국에는’ 또는 ‘그래봤자’ 그것은 다른 무엇과도 다를 바가 없다. 이것은 본질에 관한 문제일지도 모릅니다. 우리 모두는 이렇게 말할 수 있고, 또 말하기를 좋아합니다. 인간은 인간이고, 아파트는 아파트다. 그리고 무언가 잘못된 것이 있다면, 그것은 그러한 ‘본질’을 외면하거나 보지 못한 탓이라고 느끼기도 합니다. 외양의 화려함에 현혹되었거나 순수한 마음을 잃었다고 말입니다. 하지만 사실은 반대일지 모릅니다. 그러니까 실제로 그러한 것, 이른바 진실은, 외양 너머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보는 그대로라고 말입니다.
최근에 어느 젊은 힙합 가수의 부모들이 ‘타워팰리스’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화제가 되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힙합’이라고 부르는 음악 장르의 가수와는 잘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물론 이 또한 한낱 외양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우리가 ‘힙합’에 기대하는 것은 ‘타워팰리스’가 표방하는 가치와는 가능한 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것처럼 생각됩니다. 체제와 제도에 대한 저항이나 전복성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아니면 적어도 그런 척 하기를 기대합니다. 아마도 몇몇 네티즌들이 그러한 의미에서 그 젊은 가수에게 비난의 글을 올렸던 모양입니다. 그러자 그 가수는 이렇게 말합니다. ‘타워팰리스’에 살고 있는 것은 맞다. 하지만 그분들은 부정한 방법으로 돈을 번 것이 아니다. 그분들은 정직하게 돈을 버셨고 나는 그렇기 때문에 그분들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저도 직접 들은 게 아니고 전해들은 말이라 그대로는 아니겠지만 대충 이러한 요지의 말이었다고 합니다. 저는 그 가수를 비난할 마음은 없지만 - 사실 부자 아버지를 가졌다는 게 비난받을 이유도 없지만 적어도 그가 한 가지 착각을 하고 있다는 점은 이 자리에서 지적하고 싶어지는 군요. 그것은 이런 것입니다. 정당한 대우와 정당한 임금을 지불받을 때에도 노동자는 착취당하고 있는 거라고 말입니다. 왜냐하면 노동자란 그 말의 정의상 ‘자기 자신 - 노동력’을 시장에 하나의 상품으로 내다 파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착취당하지 않는’ 노동자가 구조적으로 가능하지 않은 것처럼, 진정으로 ‘정직한’ 부자도 존재하지 않는 겁니다. 굳이 표현하고 싶다면 ‘합법적인 대우를 받는’ 노동자와 ‘합법적인 방법으로 돈을 번’ 부자가 있을 뿐이겠죠. 그리고 당연한 것일 테지만 ‘합법적’이라는 것이 ‘정직함’이나 ‘선함’ ‘훌륭함’을 보증해주는 것은 아닙니다. 더더군다나 진정한 ‘저항’이나 ‘전복’은 ‘합법적이지 않은’ 것들을 향한 것이 아니라, 또는 다만 예외적으로 ‘잘못되거나 부당한’ 법을 향한 것이 아니라, 어떤 면에서는 ‘법 그 자체’를 향해 있는 것입니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그들의 저항이나 전복은 고작해야 선생님의 눈을 피해 교실에서 떠드는 아이거나, 혹은 ‘떠드는 아이’들을 선생님께 고발하는 얄미운 반장의 수준에 머무는 것일 뿐입니다. 그리고 그때 그것은 저항이나 전복이라고 불리기보다 오히려 그 반대라고 불러야 할 것입니다. 바로 체제와 제도를 강화하는 적극적인 행위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부모님들은 부자다, 라고 말하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또는 그들은 정직하신 분들이다, 도 괜찮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정직한 부자’라고 말하는 것은 곤란합니다. 그때 그 젊은 가수는 자신들을 맹목적으로 따르며 부모님이나 학교 몰래 공연장을 찾고 아르바이트로 열심히 모은 돈을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에게 줄 선물 사는 데 다 써버리는 팬들, 이른바 ‘빠순이’들보다 더욱 곤란한 수준으로 떨어지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비록 그들의 맹목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이거나 때로 정신병적으로 보이긴 해도, 거기에는 진정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이 사회와 제도가 무어라고 하며 어떤 시선으로 바라본다 해도, ‘그것’을 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살고 있는 곳이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줍니다, 라는 광고 카피는 어떤 면에서 참 끔찍한 말이지만, 이제 우리는 그것이 정확한 사실이라는 점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것이 그렇지 않다고 믿는 것, 또는 그렇게 주장하는 것은 오히려 그러한 현실을 남몰래 승인하고 지탱하는 것입니다. ‘타워팰리스’에 사는 사람들은 바로 그렇게 취급되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그들은 우리와 다르다(이효리는 일반 여자와 다르다), 라고 말입니다. 아니, 말을 조금 바꾸어서, 우리는 ‘그들’이 아니다 라고 말해야 합니다. 그리고 한발 더 나아가서 어쩌면 ‘아무도 그들이 아니다.’라고 말하고 싶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말이 ‘그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닙니다. 아무도 그들이 아니지만, 그들은 ‘그곳’에 있습니다. 바로 ‘높고 커다랗고 전체적으로 사각기둥의 형상을 한’ 아파트에 살고 있죠. 이것은 수사적인 말이 아닙니다. 거의 매일같이 저는 그 건물들을 보고, 어두워질 무렵이면 밝혀지는 창들의 불빛들을 확인합니다. 분명 누군가가 거기에 있어서 불을 켜는 것입니다. 그리고 꼭대기 지붕의 조명도 매일같이 밝혀집니다. 그 불빛은 생활의 필요에 의한 것이 아니라 순전히 장식적인 것이라는 점은 명백합니다. 하지만 그 조명은 마치 ‘타워팰리스’ 자체가 스스로 불을 밝히는 것 같습니다. 마치 나는 살아있다고 말하는 듯합니다. 저는 때로 그 장식조명이 앞서 말한 ‘천상의 도시’라는 느낌을 넘어서, 이제라도 금방 실제로 그 건물들이 하늘로 날아오를 것 같은 느낌을 준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것은 지상을 향해 있는 것이 아니라, 천상의 어떤 존재들을 향한 신호가 되는 것입니다. 만일 그러한 곳이 있다면 가장 먼저 그곳으로 입장해야 할 사람들이 바로 자기 자신들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좋다, 어쨌든 가장 먼저든, 가장 높이든, 이곳에서 날아올라 사라지라고 말하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한낱 상상에 불과합니다. 그냥 그렇게 보일 뿐입니다. 이것을 말 그대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것은 ‘상상’에 불과하지만 바로 그것이 현실이라는 점을 말입니다. 그것은, ‘타워팰리스’는, 또 어쩌면 그 젊은 힙합가수의 ‘정직한 부자 부모’들은 상상에 불과하지만, 그것이 바로 우리 현실의 한가운데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한낱 상상으로써, 또 온전한 현실로써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다시 한 번 우리는 그것을 말 그대로의 의미로, ‘현실 속에 있는 상상’으로 받아들여야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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