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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재

물고기통신 105 - 경찰 눈에는 경찰만 본문

물고기통신

물고기통신 105 - 경찰 눈에는 경찰만

물고기군 2005. 8. 31. 03:08

제가 아직 어렸을 때, 그러니까 지금은 초등학교라 부르는 ‘국민학교’ 시절, 한 친구가 있었습니다. 거진 20년이 되어가는 세월이 흐른 지금에도 저는 그 친구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친하게 지냈던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그건 아마 5학년이나 6학년 때였을 텐데, 그 친구는 반장이었고 육상부였으며, 당연하게도 공부도 잘하고 얼굴도 잘 생기고 몸매도 좋있습니다. 여자들에게 인기가 있었을 뿐만 아니라, 남자들에게도 선망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런 것에 비해 뻐기는 스타일도 아니었죠. 한 마디로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싶은 요소를 모두 갖춘 그런 친구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제게 말을 걸어주거나 친한 척 해주면, 괜히 저 자신조차 우쭐거리는 기분을 느끼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 친구와 관련된 여러 기억이 있는데, 여기서는 한 가지만 소개하겠습니다. 어느 날 그 친구는 다른 친구와 말싸움을 하게 되었습니다. 무슨 이유에선지, 또 상대방은 누구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습니다. 다만, 그 상대방이 이렇게 그를 몰아붙였습니다. “부처 눈에는 부처만 보이고, 돼지 눈에는 돼지만 보인다더니 ….” 아마 그 반장이었던 친구가 그를 ‘돼지’와 비슷한 무언가라고 매도했던 거겠죠. 아, 이건 꽤 재치있는 표현이 아닙니까? 적어도 국민학생이 게다가 잔뜩 흥분되어 있는 말싸움 중에 쉽게 찾아낼 수 있는 표현은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자 그 반장이 이렇게 그 말을 받습니다. “경찰 눈에 경찰만 보인다면 어떻게 도둑을 잡냐?” 이걸로 말싸움은 끝이 났습니다. 상대방은 그 반박에 대꾸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정말 국민학생 둘이 이런 대화를 나눴던 걸까요? 하지만 이건 정말 있었던 일입니다. 저는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20여년이 흐른 지금에도 문득 생각이 나는 거겠죠. 그 말싸움을 지켜보던 저의 놀라움도 여전히 생생합니다. 모두가 반장은 역시 반장이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그는 다르다. 여자들은 다시 한번 그의 지성에, 또 그의 논리력에 감탄했을 겁니다. 그것은 말싸움에 불과했지만, 그 승리는 단순히 그가 육체적으로 우월할 뿐만 아니라 머리로도 우월한 인간이라는 것을 단박에 증명해주었던 것입니다. 저도 물론 그런 열광에 빠져 있던 인간 중의 하나였습니다. 그래서 앞서 말했듯이 그 반장의 이름과 얼굴을 선명히 기억하고 있음에도, 그 상대방, ‘부처 눈에는 부처만 보인다.’던 친구에 대해서는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 거겠죠. 하지만 이제 돌이켜보니 그것은 논리라고 부를 수 있는 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국민학생이 사용하기에는 여전히 놀라운 솜씨였지만, 고작해야 그의 형이나 주변의 사람들에게 주워들은 이야기, 단순한 말싸움의 테크닉에 불과한 것이었습니다. 잔재주라 부르고 싶어지기도 합니다. 오히려 이제 저는 그 상대방이 옳았던 것을 알게 됩니다. ‘부처의 눈에는 부처만 보이고, 돼지의 눈에는 돼지만 보인다.’ 물론 이 말도 역시 그의 말은 아니고 원래 ‘있던’ 말이죠. 하지만 그는 제대로 이 말을 사용했던 것입니다. 아주 적절한 순간에, 또 표현하고 싶은 바로 그 의미로, 꼭 들어야 할 사람에게. 다른 사람들은 모두 ‘너, 반장’을 대단한 인간이라고 여길지 모르지만, 너는 결국 사람들이 그렇게 여기는 한에서만 존재하는 아주 얕은 인간이 아니냐? 네가 ‘반장’ 또는 ‘특별한 인간’인 것은 너의 자질 때문이 아니라, 사람들이 너를 반장이라고, 또 무어라고 보아주기 때문이 아니냐?
그리고 이제 반장의 잔재주에 불과한 말, ‘경찰 눈에 경찰만 보인다면 어떻게 도둑을 잡지?’에 대한 대답도 알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그도 알고 있었을지 모릅니다. 정말 몰랐던 것은 우리들이었는지도 모르죠. ‘바보, 바로 그렇게 때문에 도둑을 잡을 수 있는 게 아니냐? 도둑은 경찰의 눈에만 보이는 것이 아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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