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재
물고기통신 40 - 레이몬드 카버 '심부름' 본문
오늘도 날씨가 참 좋습니다. 지금 저는 마루로 나와, 커다란 창을 앞에 두고 이 글을 적고 있습니다. 창문을 아주 조금 열었습니다. 창밖으로는 낮은 빌딩들과, 옥상의 안테나, 노란 급수통 등이 보입니다. 안테나들은 마치 살을 발라낸 생선가시처럼 보입니다만, 이건 진부한 비유라고 생각합니다. 진부하지만, 정말 그렇게 보입니다. 또 어떻게 보이냐면, 새로 개발된 미사일처럼도 보입니다. 긴 세로줄에 엇갈리듯 좌우로 뻗은 가로줄들이 마치 목표물을 정확하게 찾아내기 위한 첨단 센서거나, 적에게 더 큰 타격을 입히기 위해 목표물 가까이에서 순식간에 좌우로 분리되어 터지는 소형 미사일들 같습니다. 그러나 이것도 진부한 비유입니다. 안테나는 그냥 안테나인 겁니다. 잔에 담긴 커피는 아직 따뜻합니다. 그런데도 오늘은 기분이 조금 그렇군요.
어제 밤에는 문득, ‘사라지는 것’에 관한 생각을 했더랬습니다. 모든 것들이 사라지고 종국에 남아있을 것에 관한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얼마나 걸리지는 알 수 없지만, 그것도 결국 사라질 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바로 나 자신 말입니다. 나도 언젠가는 사라질 것입니다. 나의 육신뿐만 아니라, 지금 내가 나라고 규정하는 의식의 대상, 또한 그 의식까지도 사라질 것입니다. 기억도, 아무 것도 남지 않습니다. 여전히 죽음을 생각한다는 건 두려운 일입니다.
레이몬드의 카버의 소설 중에, 제가 특히 좋아하는 것은, ‘심부름’이라는 작품입니다. 그것은 카버가, 암선고를 받은 후,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남긴 작품으로, 지금으로부터 거의 백 년 전의 작가, ‘체홉’의 얘기를 담고 있습니다. 체홉 자신도, 결핵으로 죽음을 맞기 직전, ‘체리 과수원’이라는 희곡을 썼습니다. 그가 살아 생전에 남긴 마지막 작품입니다. <“열정이 사라지기 시작했소.” … “작가로서의 내 생명은 이미 끝난 느낌이오. 문장 하나하나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들이라는 자괴감이 나를 후려치고 있소.”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1903년 10월, 이윽고 그 희곡을 완성시켰던 것이다.> 카버 역시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죽음을 맞기 직전에 쓴 마지막 작품이라는 점과 별도로, ‘심부름’은, 가슴에 굉장히 무거운 것이 덜컥 얹어지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탁월한 작품입니다. 처음 읽었을 때, 어떻게 이런 소설을 쓸 수 있을까, 굉장히 흥분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 역시 스스로 느끼기에,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듯한 문장들을 쓰고 있다는 자괴감을 안고서, 작품을 써나갔다고 생각합니다. 어째서 그들은 그렇게 했을까?
항상 죽음을 생각하면,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라고 생각합니다. 그때, 그 상황에서 내가 이렇게 하지 않고, 저렇게 했더라면 지금의 나는 어땠을까? 그리고 나는 무엇을 해야만 했었을까? 어느 게 옳았던 일일까? 그러다 잠이 들었고, 오늘 아침 다시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아직 저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살아 있습니다.
어제 밤에는 문득, ‘사라지는 것’에 관한 생각을 했더랬습니다. 모든 것들이 사라지고 종국에 남아있을 것에 관한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얼마나 걸리지는 알 수 없지만, 그것도 결국 사라질 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바로 나 자신 말입니다. 나도 언젠가는 사라질 것입니다. 나의 육신뿐만 아니라, 지금 내가 나라고 규정하는 의식의 대상, 또한 그 의식까지도 사라질 것입니다. 기억도, 아무 것도 남지 않습니다. 여전히 죽음을 생각한다는 건 두려운 일입니다.
레이몬드의 카버의 소설 중에, 제가 특히 좋아하는 것은, ‘심부름’이라는 작품입니다. 그것은 카버가, 암선고를 받은 후,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남긴 작품으로, 지금으로부터 거의 백 년 전의 작가, ‘체홉’의 얘기를 담고 있습니다. 체홉 자신도, 결핵으로 죽음을 맞기 직전, ‘체리 과수원’이라는 희곡을 썼습니다. 그가 살아 생전에 남긴 마지막 작품입니다. <“열정이 사라지기 시작했소.” … “작가로서의 내 생명은 이미 끝난 느낌이오. 문장 하나하나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들이라는 자괴감이 나를 후려치고 있소.”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1903년 10월, 이윽고 그 희곡을 완성시켰던 것이다.> 카버 역시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죽음을 맞기 직전에 쓴 마지막 작품이라는 점과 별도로, ‘심부름’은, 가슴에 굉장히 무거운 것이 덜컥 얹어지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탁월한 작품입니다. 처음 읽었을 때, 어떻게 이런 소설을 쓸 수 있을까, 굉장히 흥분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 역시 스스로 느끼기에,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듯한 문장들을 쓰고 있다는 자괴감을 안고서, 작품을 써나갔다고 생각합니다. 어째서 그들은 그렇게 했을까?
항상 죽음을 생각하면,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라고 생각합니다. 그때, 그 상황에서 내가 이렇게 하지 않고, 저렇게 했더라면 지금의 나는 어땠을까? 그리고 나는 무엇을 해야만 했었을까? 어느 게 옳았던 일일까? 그러다 잠이 들었고, 오늘 아침 다시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아직 저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살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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