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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왜 그랬니?

물고기군 1998. 7. 29. 23:46
참 이상해. 어제 친구랑 술을 한 잔 했는데, 생각해보니까 항상 여자와 헤어질 때마다 그 친구랑 술을 마셨다는 걸 깨달았어. 어떤 느낌이었냐면 모든 일들이 그렇게 반복된다는 거야.
계절이 바뀔때마다, 똑같은 계절의 냄새를 맡을 수 있는 것처럼. 그냥 내가 조금씩 늙었을 뿐이고 나이가 몇 살 들었다는 차이외에는. 여자도 그래. 분명 다른 여자인데도 예전에 만났던 여자와 비슷한 느낌의 여자들이 있어. 그녀를 만날 때마다 예전의 여자를 생각하곤 했지.
왜 그럴까? 그렇게 모든게 반복된다고 생각하면 산다는 것도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닐텐데.
사실은 내 자신이 단 한발짝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지도 모르지.
이 세상이 변증법적으로 발전한다는게 사실이라면, 나로서는 멍청하게 헛딛으며 살아왔다는 거야.
우울한 일이지. 그래도 괜찮아. 결국에는 똑같은 반복으로 멍청하게 여자와 헤어지고 그 친구와 술을 마셨지만 그런식으로 인생을 산다는 것도 유쾌한 일일거야.
그게 나인거야. 정말 한심하고 구역질 나도록 싫지만, 어쩔 수 없어.
어제는 정말 많이도 마셨지. 셋이서 소주를 다섯 병이나 마셨으니. 내가 유독 욕심을 부렸기 때문에 아마 두 병 정도는 나 혼자 마시지 않았을까 싶은데 내 평소 주량과 비교하면 좀 과하다 싶었지.
어쨌든 어제 나와 함께 술을 마셔준 친구한테 고맙단 생각이 드네.
그래서 만약 그 친구가 여자와 헤어지게 되면 물론 나도 같이 술한잔 해줄 수 있을 텐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게 좋겠지.
오늘도 술을 마셨어. 너무 자주 술을 마시는 거 아니야? 이미 다 끝난 일이쟎아.
글쎄, 충분치 않아. 전혀 충분하지 않아. 아직 아무것도 끝나지 않은거야. 이봐, 정말이야 네 인생에서 한 사람을 보냈어. 다시는 만나지 못할 거야. 게다가 한순간이라도 넌 그를 소중하게 생각했쟎아. 그런 어떤 한 사람을 보냈어. 영원히.
전혀 충분하지 않아. 내가 그 사람에게 할 수 있는 마지막이야. 결국엔 내 쪽에서 싫어져 차버렸든, 그건 중요하지 않아. 알겠어? 넌 또 한사람을 보냈다구. 왜 그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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