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재
다정함 본문
넌 대단한 걸 잃어버린 양 호들갑을 떨지만, 마치 세상 전부를 잃은 것처럼 말이야. 허나 네가 잃은 건 그녀가 네게 주었던 '다정함'일 뿐이야. 하나의 사랑도, 4월의 100퍼센트의 소녀도, fresh한 겐조 향수내음도, 자주 쓰다듬던 머리칼도, 매끄러운 피부의 감촉도 아닌 여자의 친절한 배려, 다정함, 그리고 너도 알다시피 그건 이미 사라졌어. 오래된 책에서 10년전의 나뭇잎 책갈피를 찾아내듯 찾을 수 있는 게 아니야. 하지만 괜찮아. 누구나 알겠지만 '다정함'에는 개성이 없지. 더 예쁜 다정함이 없듯이, 더 못난 다정함도 없고, 호감이 가는 다정함, 혹은 사람을 불쾌하게 하는 다정함도 없어. 다정함은 다정함일 뿐이라고. 물론 꼭 같진 않겠지만 그녀가 줬던 그만큼의 다정함은 언제든 구할 수 있을거야. 처음엔 힘들겠지. 울리지 않는 방 전화나, 하루종일 no page인 호출기, 당황스럽기도 하고. 그래도 잊어버려. 좋은 사람이었어. 그러나 그게 이제 와서 무슨 소용이겠어. 술도 그만 마시고, 현실적인 삶에 적응해야지. 이번에 오는 열차는 꼭 타야 돼. 응?
-1998년의 메모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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