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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재

파트릭 모디아노, "아득한 기억의 저편" 본문

독후감

파트릭 모디아노, "아득한 기억의 저편"

물고기군 2001. 10. 10. 21:05

파트릭 모디아노, "아득한 기억의 저편", 연미선, 자작나무, 1999

이 소설의 원제목은, "Du plus loin de l'oubli"(망각의 가장 깊은 곳으로부터)이다. 그 뜻을 손상시키지 않고, 나름대로 그럴듯하게 우리말 제목으로 바꾼 셈이다.

모디아노의 대개의 소설이 그러하듯이, (혹은 그러할 거라고 짐작하듯이), 이 작품 역시, '잊음(잃음)'의 테마를 변주하고 있다. 그것은 역시 하나의 공간을 고스란히 그대로 담고 있는 시간의 잃음이다. 그러나 그 '잃음'은 단순히 '흘러가는 시간'이라는 일반적인 그것을 넘어서, 어쩌면 인간 실존에 숙명적으로 새겨져 있는 어떤 '빈 곳'을 지적하고 있다. 모디아노는 그래서 '어두운'이나, '사라진', 또는 '희미한'이란 형용사에 주목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녀의 키는 보통이었고, 제라르 반 베버르는 그녀보다 약간 더 작았다.
30년 전 그 겨울 우리가 처음 만났던 저녁 무렵에 나는 이 커플과 센 강의 투르넬 강변로에 위치한 호텔까지 동행했고, 그들과 함께 그곳에 머물렀다. 그곳에는 침대 두 개가 있었는데, 하나는 방문 근처에, 다른 하나는 창가에 놓여 있었다. 센 강변의 반대편으로 나 있는 그 창문은 마치 지붕 밑의 다락방에 달린 작은 들창처럼 보였다."

화자는 '30년 전 그 겨울'의 이야기로 소설을 시작한다. 30년 전 그 겨울에 화자, 즉 소설 속의 '나'는 스물 살이고, 대학 공부를 포기하고 가지고 있는 헌책들을 헌책방에 내다 팔면서 생계를 꾸려나가고 있다. 역시 '나'는 아무 것도 아니다. 나는 쟈클린이라는 여자를 만난다. 쟈클린은 지중해 서부에 있는 마요르카 섬에 가기 위해 돈을 모으고 있다. 마요르카에는 그녀를 도와줄 사람이 살고 있다. 주말마다 그녀와 그녀의 남자친구는 파리 근교의 도박장에서 도박을 한다. 언제나 잃은 돈의 두 배를 다시 판에 건다. 잘 되는 날도 있고, 그렇지 않은 날도 있다. 쟈클린은 그녀의 남자친구를 사랑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과 별도로, 그녀는 다른 남자와 관계를 갖는다. 그들 덕에 그들은 생활할 수 있다. 결국 쟈클린과 '나'는 남자친구를 남겨둔 채 파리를 떠나 영국의 런던으로 도망한다. 영국에서의 생활도 별 반 다르지 않다. 그리고 어느 날 그녀는 집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십 오년의 세월이 흘러, 나는 다시 파리에서 '쟈클린'을 만나게 된다. 그녀는 이름을 바꿨고, 긴 머리를 짧게 잘랐고, 결혼을 했다.

"만약 우리가 15년마다 만난다면 다음에는 네가 나를 알아보지 못할 수도 있을 거야."
그때쯤이면 우리는 몇 살이 될까? 쉰 살이 될 거다. 그러나 그 나이는 내게 무척 이상하게 느껴졌기 때문에 나는 혼자 중얼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오십이라고..."
(...)
나는 그녀가 나의 목에 입맞춤하는 것을 느꼈다. 나는 그녀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어주었다. 머리카락은 옛날만큼 길진 않았지만, 정말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었다.
시간은 멈추었다. 아니, 시간은 단테 카페가 문을 닫기 직전에 우리가 만났던 저녁, 카페의 벽시계가 가리고 있었던 그 때로 되돌아갔다.

모디아노의 소설은 언제나 그렇듯, 읽는 동안에는 한편으로 지루하고 한편으로 의심하게 된다. 이것이 과연 거장의 소설인가? 그러나 다 읽고 난 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면 꼭 다시 읽고 싶어지게 된다. 그런 게 좋다. 그리고 읽을 때마다 조금씩 소설은 다르게 느껴진다. 읽을 때마다 매번 다르게 소설은 우리에게 말한다. 아무 장이나 펼쳐놓고 한 줄 한 줄 음미하듯이 읽다보면, 책에서 눈을 떼고 소설 속의 주인공이 아니라, 바로 나의 인생에 대해서 생각하게 될 구절들을 발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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