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재
마지막 손님 본문
열한 시에 문을 닫는 관계로 열 시 삼십 분경에 들어오는 손님들은 항상 신경이 쓰인다. 일단은 들어오는 입구에서 자리로 안내하면서 영업시간이 열한 시까지인데 괜찮으시겠냐고 묻는다. 그럼 대개의 손님은 현재 시간을 확인하고 (열 시 삼십 분이다!) 괜찮다고 한다. 그러나 또 대개의 손님은 결코 열한 시 이전에 자리를 일어서는 법이 없다. 나는 이 점이 아주 못마땅하다. 그렇다 해도 손님은 손님이니 무례하게 굴 수가 없다. 마감은 항상 내 몫이기에 하염없이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오늘도 열 시 삼십 분경에 손님이 들어왔다. 나는 손님을 맞으러 나가는 직원에게 꼭 물리치고 오라고 신신당부한다. 하지만 역시 자리에 앉고 만다. 남녀 한 쌍으로 옷차림이나 외모는 평범하다. 여자는 베이지 색의 바바리를 걸쳤고, 남자는 조금 촌스러운 스타일의 점퍼를 걸쳤다. 여자는 뚱뚱하고, 남자는 안경을 쓰고 신경을 쓰지 않는 듯한 머리 모양을 했다. 적어도 이 카페를 찾는 손님들의 평균치에 비한다면 조금 떨어지는 스타일이다. 나이는 한 스물 대여섯 살 정도. 그래도 다행스러운 것이 그들이 내가 가장 자랑스럽게 여기는 커피를 주문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직접 핸드 드립으로 한 잔 한 잔 내리는 아주 진한 커피로, 사실상 이 카페의 대표적인 음료라 할 수 있다. 일반인들이 먹기에는 상당히 진해서, 그다지 인기 있는 음료라 할 수는 없지만, 주방에서 직접 커피를 내리는 나로서는, 비록 다른 음료에 비해 신경을 더 많이 써야 하지만, 주문이 들어오면 기분이 좋아진다. 마치 가장 자신 있는 재주를 부릴 차례를 맞은 곡예사가 된 기분이다. 더욱 그들에게 호감을 느끼게 된 건, 그들이 그 진한 커피에 설탕도 액상도 첨가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나서다. 물론 커피란 게 기호식품이므로 뭔가를 첨가해서 마신다고 해서 잘못된 건 아니지만, 그래도 그냥 마셔주는 사람들은 나는 더욱 미덥다. 그들은 리필을 해서 한 잔씩을 더 마시고는 열한 시 십분 경에 자리에서 일어섰다. 남자는 카운터 옆 편에 장식되어 있는 골동 축음기를 발견하고는 여자에게 소리친다. “여기 신기한 게 있네.” 뒤따라온 여자도 그것을 보고는 내게 묻는다. “이걸로 음악도 틀어요?” 나는 웃으면서 소리가 나긴 하지만 틀지는 않는다고 했다. 그들을 따라 입구까지 가서 문을 잠그면서 그들이 올라타는 차를 보았다. 아주 구형의 소형차다. 역시 이 카페를 찾는 손님들의 평균치에 비하면 떨어지는 자동차다. 게다가 관리도 잘 하지 않는지 도장에 광택도 없고, 바닥과 가까운 차체에는 시커멓게 흙먼지가 묻어있다.
나는 돌아와 그들의 자리를 치우고 남은 설거지를 하면서 그들이 과연 어떤 사이인지 짐작해본다. 어쩌면 그들은 젊은 부부인지도 모른다. 연인 사이라기에는 너무 옷차림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 아니면 연인 사이이긴 하지만 아주 오래된 연인들이라 그런 건 신경 쓰지 않는지도 모를 일이다. 또 어쩌면 연인 사이가 아니라 그저 친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친구라고 하기에는 늦은 시간이다. 그들은 서로에게 꼭 할 말이 있었던 게 아니라, 그저 아주 진한 커피를 마시기 위해 카페를 찾은 것이다. 나는 그들이 일요일 집에서 뒹굴 거리다, 문득 커피가 마시고 싶어져서 대충 옷을 걸쳐 입고 집을 나섰을 것 같다는 짐작을 해본다. 마치 떡볶이나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어진 것처럼 말이다. “커피 마시고 싶지 않니?” 남자가 묻는다. 여자는 소파에 두 다리를 끌어안고 앉아 있다가, 그렇다고 대답한다. 남자는 그럼 나가자고 한다. 그들은 벌써 시간이 열 시도 넘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일요일인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일요일 저녁의 한산한 도로를 달려 카페를 찾는다. 어쩌면 그들은 이제 집으로 돌아가면서 커피가 참 맛있었다는 얘기를 할지도 모른다. 또는 오늘 밤 잠이 오지 않으면 어떡하나 걱정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것쯤은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여자는 남자가 운전을 너무 험하게 한다고 걱정한다. 남자는 여자가 자주 안전벨트를 매지 않는 것을 나무란다. 하지만 역시 그런 것들도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밤은 깊고, 마지막 손님을 내보내고, 나는 한동안 카페 밖 거리를 내다본다. 잠긴 문을 차례차례 확인하고, 또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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