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재
2층에서 본문
바람이 많이 부는 날이었다. 나는 입구를 등지고 앉아 있다. 잠시 서로 말이 없다가, 문득 선생님이 입을 열었다.
“올 가을 들어 가장 많이 낙엽이 떨어지는 날이군.”
나는 몸을 돌려 선생님이 바라보던 가게 바깥의 나무를 바라보며 그저 ‘예’하고 대답했다. 나뭇잎들이 떨어지고 있었다. 나는 잠시 나무 가지가 가르쳐주는 바람의 방향을 바라보다가 다시 몸을 돌렸다. 며칠 간 겨울이 온 듯이 추웠다. 사람들은 이미 겨울이 왔다고 느꼈다. 그러다 어제부터 날씨가 풀렸다. 그리고 오늘 나뭇잎들이 바람에 떨어진다. 그 방향이 어디든, 불어오는 것은 그저 바람이라고 생각했던 순간이 있었다. 그 생각은 문득 떠오른 것이었다. 나는 그것이 일종의 비유라고 생각했다. 그래, 그것은 바람일 뿐이지. 무슨 말인지 알겠어? 그러니까 내 말은...
하지만 그 다음 말을 나는 생각해내지 못했다. 그리고 그 생각을 잊었고, 지금도 그 다음 말을 알지 못한다.
선생님의 가게를 나와 나는 버스를 탄다. 날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나는 버스를 타고 두 서너 정거장을 간다. 바람이 잦았다. 불을 밝히기 시작하는 상점들의 거리를 걷는다. 내가 찾고 있는 가게가 나오지 않는다. 저녁은 집에서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아무데고 다시 2층의 카페로 들어간다. 창 밖으로 내가 서 있던 거리가 보인다. 차도 위로 피자 배달부의 빨간색 스쿠터가 지나간다. 어디선가 종이 타는 냄새가 난다고 느꼈다. 아니면 그것은 카레 냄새였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종이 타는 냄새도, 카레 냄새도 아니었을 것이다. 냄새는 금방 사라진다. 나는 무심코 보도 위의 남녀를 바라보고 있다. 곧이어 나는 여자가 울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녀는 손바닥으로 눈물을 훔치고 있다. 손바닥으로 눈 주위를 꾹꾹 눌러가며, 마치 어린아이처럼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그리고 불쑥 남자를 안았다. 남자의 몸에 매달린다. 남자는 여자가 하는 대로 내버려 두고 있다. 어쩌면 남자는 여자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이고 있는 지도 모른다. 나는 잠시 그 상황이 어떤 것인지 상상해본다. 둘은 뭔가 얘기를 나누고 있다. 그리고 여자는 남자를 떠민다. 아니다. 그것은 마치 떠미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을 끌어당기는 건지도 몰랐다. 남자는 한사코 그 자리에 서서 꼼짝하려 하지 않는다. 무슨 일일까? 결국 남자는 혼자 택시를 탄다. 남자가 탄 택시를 쫓아 여자가 고개를 돌린다. 나는 여자의 그 행동을 이미 예상했다. 잠시 여자는 바지 주머니에 양 손을 모두 집어넣고 그 자리에 서 있다. 그러나 곧 여자도 택시를 타고 그 자리를 떠난다. 나는 시선을 한 번도 돌리지 않고 그 모든 상황을 지켜보았다. 2층에서.
화장실에 들어가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을 한 번 물끄러미 쳐다보고 카페를 나왔다. 집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바람 한 점 없는데도, 낙엽들은 떨어진다. 바람이 불지 않아도 낙엽은 떨어진다는 사실을 알았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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