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재
손톱깎이 본문
십년. 뻔한 얘기 같지만, 십년이란 시간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세월이다. 특히 그것이 한 인간의 이십대 시절일 경우 더욱 그렇다. 우리는 잔디밭이 넓은 어느 공원 벤치에 앉아있다. 공원에 들어서면서 나는 그녀에게 뭐 좀 마시겠냐고 물었다. 그녀는 커피를 마시겠다고 했다. 따뜻한 커피. 나는 공원 초입에 있는 조그만 간이매점에서 직접 타 주는 커피 두 잔을 산다. 그것은 우리의 두 번째 만남이었다. 그녀가 얘기를 끝마쳤을 때, 그것은 약 두 시간이 흐른 뒤였다. 십년의 얘기를 두 시간동안 한다는 것이, 짧은 건지 긴 건지 알 수 없었다. 만일 할 수만 있다면 여러 사람들을 만나 그 평균값을 구할 수도 있을 테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녀의 십년이 어떤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어떤 경로를 통해 그녀가 지난 시절의 삶을 내게 애기하게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어느새 그녀는 자신의 가족 이야기를 비롯해서 남자 이야기, 친구들, 대학을 졸업한 뒤에 들어간 첫 직장 등등의 이야기를 내게 하고 있었다. 아마도 그건, 나중에 그녀가 자신의 입으로도 직접 말했듯이, 현재 자신의 모습이 못마땅하기 때문일 것이다. 누군가에게 그 시절의 이야기를 들려줌으로써, 현재 자신의 모습을 감추려고 하는 것이다. 상대방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에게 말이다. 나는 그것이 그녀의 가장 좋았던 시절이었다고 믿었다. 인생은 결코 반복되지 않는다. 그것은 언제나 좋았던 시절 으로부터 자꾸만 나빠지기만 할 뿐이다. 그 속도를 늦출 수는 있지만, 결코 역전시킬 수는 없다. 나는 그녀가 아름다웠던 시절의 그녀 모습이 그리웠다.
“그때 당신의 모습을 보고 싶어요.” 하고 나는 말했다.
그녀는 아주 조금 웃었다.
“하지만 지금도 아주 예뻐요.”
“그렇지 않아요.” 하고 그녀가 말했다. 그 다음에 그녀는 뭔가 말하려다가 그만두었는데, 아마도 그 말은 ‘그건 당신이 그 시절의 저를 보지 못했기 때문일 거예요.’ 라는 말이었을 것이다.
슬픔은 때로 가만히 자신의 삶을 들여다 볼 때 찾아온다. 거기에는 언제나 우리가 잃어버린 것의 리스트밖에 없다. 모든 게 끝나고, 거기서부터 또 모든 일이 시작된다.